PSL(Problem Solving Leadership)이라고 하는 워크숍이 있습니다. 저는 2010년에 참석을 했습니다. 이 워크숍의 특징 중 하나는 과정 대부분이 시뮬레이션이라고 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시뮬레이션은 경험적 학습(Experiential Learning)의 한 가지 방법입니다. 진행자가 시나리오와 규칙, 역할 등을 알려주고 참가자들이 그 속에 몰입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열린 문제(즉, 정답이 하나로 딱 정해져있지 않은)를 주고, 참가자들은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제가 와인버그의 PSL을 통해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겉으로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시뮬레이션 속에서는 어떤 고정적 문제 행동을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겉으로는 원만해 보이지만 시간의 압박을 받는 시뮬레이션 속에서 사람들에게 항상 소리치고 지시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숨겨진 문제 패턴들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시뮬레이션은 생각보다 더 강렬했고 긴장감이 높았습니다. 실제로 서로 다투는 사람이 있고, 그 와중에 흐느껴 우는 사람도 있고, 다 싫다고 교육장을 떠나 버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교육자의 역할은 학습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입니다. 경계선을 명확히 해주고 경계선을 넘는 경우가 있으면 가서 중재하고 코칭해 줍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이 끝나면 거의 같은 시간 동안(3시간 시뮬레이션 하면, 회고도 3시간 가량) 회고를 진행해서 참가자들이 자신들에 대해 더 많이 발견하고 배우게 도와줍니다.

이걸 며칠에 걸쳐서 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누가 협력하기 좋은 사람이고 누가 리더십이 뛰어나며, 누가 불화를 만들고 조직을 삐걱거리게 만드는 사람인지, 누가 수동적 순응만 하고 적극적인 기여가 없는 사람인지를 다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알게 되죠. 여기에서 충격이 오고 쪽팔림이 오고 반성이 오고 학습이 생기고 새로운 행동의 시도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런 걸 지식 전달을 통해 경험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슬라이드 수백개를 봐도 이런 깨달음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고, 자각과 변화가 오기 어렵습니다. 말과 행동이 바뀌려면 생각과 믿음이 바뀌어야 하며, 그러려면 다른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PSL에서 경험적 학습의 힘을 경험하고 그 이후 제 교육의 많은 부분에서 이런 요소를 도입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놀라는 것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개인의 문제 패턴을 볼 수도 있고, 나아가 특정 조직의 조직 문화를 관찰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배리 오쉬리(Barry Oshry)의 "Seeing Systems"는 조직 체계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통찰을 주는 책입니다("당신이 회사에서 보지 못하는 90%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고 AC2 추천 도서 중 하나입니다).

저는 2004년도에 처음 접했는데, 사실 이 책은 파워 랩(Power Lab)이라는 저자의 독특한 워크숍 사례를 풀어낸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좋아하는 테크니컬 리더(AC2 과정을 레벨2까지 마친 조승빈님께서 훌륭하게 번역해주셨습니다)라는 책 역시 앞서 언급한, PSL 워크숍을 풀어쓴 것입니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의 효과가 1이라면 오리지널 워크숍에 참석하는 효과는 10이나 100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오쉬리의 파워 랩 워크숍은 너무 가격이 높아서(1만불) 선뜻 결정을 못하고 우선 그걸 촬영한 다큐멘타리(다큐멘타리상 수상도 했음) 비디오 테이프를 구입해 봤었죠.

기본적으로 하나의 마을을 구성해서 수십명이 함께 삼사일 생활을 합니다. 탑, 미들, 이민자로 이들은 계급이 나뉘며, 탑은 엘리트 계급으로 전체 체계를 정비하고 리딩하며, 미들은 이민자들을 직접 관리하고, 이민자들은 노동을 합니다. 이들은 먹는 음식도 다르고 주거 공간도 다릅니다(그 질적인 차이가 큼). 이 안에서 많은 갈등과 분쟁이 생깁니다. 당연히 안에는 법원이 있고 사법 엘리트가 있고 보안관이 있습니다. 또 안에서 범법 행위도 생기죠.



첫번째 사진부터 존(John)이 펑크낸 타이어와 페인트 칠 한 메를린의 신발, 그리고 다큐 맨 끝에 나오는 존의 소개


누가 화가 난다고 참가자의 자가용 타이어를 모두 구멍을 내기도 하고(게임의 틀을 벗어나서 타인의 사유재산 파손을 한 것), 다른 사람의 신발에 페인트 칠을 몰래 해놓기도 합니다. 힘들다고 엉엉 울기도 하고, 삐쳐서 숙소에서 뛰쳐나와 빈건물에서 담요들고 혼자 자겠다고 요란을 떨기도 합니다.

이 비디오의 가장 충격은 맨 마지막 크레딧 올라갈 때입니다. 여기에 출연했던 참가자들이 하나씩 소개되는데, 사실은 정유회사 오너라든가, 국제 은행 임원이거나, 세계적인 컨설턴트라든가 하는 충격의 도가니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앉혀놓고 며칠 동안 슬라이드 보여준다고 이런 숨겨진 패턴들이 나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식은 쌓여도 근저의 숨겨진 문제 행동 패턴은 자각도 없고 변화도 없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것이 명시화되고 드러나면 차후의 작업들을 통해 그걸 인정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AC2 안에도 이런 "시뮬레이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AC2 3개월 과정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뮬레이션으로 경험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과정을 겪으면서 대부분 자신의 아킬레스건에 노출되고 충격을 받게 되지요. 그리고 이 충격에서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모 유명 IT 기업의 임원이 본 교육을 들었습니다. 한 두 시간짜리 시뮬레이션을 끝내고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충격을 받았다. 평소 직원들에게 왜 이렇게 수동적이냐라는 비난을 많이 했는데 시뮬레이션 동안 내가 딱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시뮬레이션이나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효과적 시뮬레이션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몇가지 나열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이런 경험적 학습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AC2 과정을 경험해 보실 것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관련 서적으로는 와인버그의 경험적 학습 3부작을 권합니다.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