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이가 사수이고 술퍼맨이 부사수라고 칩시다. 홍춘이가 술퍼맨에게 일을 하나 시켰습니다. 훈련도 시키고, 그 사람 수준도 파악하고, 내가 하기 귀찮은 일을 넘기기도 할겸 해서 겸사겸사 시킨 일입니다. 내용은 정규식을 이용해서 텍스트의 일부를 추출하는 작업입니다.
우선 다음 상황을 먼저 보시죠. 사수가 의사소통 및 멘토링, 코칭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술퍼맨 : 저기, 홍춘이님.
홍춘이 : 왜요?
술퍼맨 : 정규식을 쓰다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시간 괜찮으세요?
홍춘이 : 뭔데요?
술퍼맨 : 이런 문자열을 잡아내려면 패턴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감이 잘 안오네요. 정규식이 익숙하질 않아서...
홍춘이 : 뭔데 그래요? (한 번 보고는) 뭐야, 이런 것도 모르세요?
술퍼맨 : ...
홍춘이 : 아니, 이 정도는 기본 아니에요. 요즘은 대학에서 이런 것도 안가르치나. 유닉스 정규식 man 페이지라도 읽어보셨어요?
술퍼맨 : 아니요.
홍춘이 : 그럼 읽어 본 게 도대체 뭐에요?
술퍼맨 : 딱히...
홍춘이 : 그러니, 맨날 이모양이죠. 제가 매일 도와드릴 수는 없잖아요? 저기 회사 서가에 가면 정규식 교과서 하나 있거든요? 그거 좀 읽어보고 나서 그래도 해결 안되면 저한테 오세요. 아셨죠?
술퍼맨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가슴 아픈 대화입니다. 술퍼맨은 스트레스로 그나마 잘하던 일까지도 더 못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일단, 용기를 내어 질문을 한 술퍼맨에게 박수를 쳐줍시다. 대부분의 경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데드라인 다 되어서 "못했습니다"란 이야기를 하죠. 이런 경우 술퍼맨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홍춘이의 잘못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홍춘이의 잘못입니다.
자, 여러분에게 물어봅시다. 술퍼맨이 이 일 이후로 홍춘이에게 질문을 더 할까요, 덜 할까요? 당연히 질문을 덜 할 것이고, 어지간해서는 질문을 안할 겁니다. 긍정적인 상황일까요? 십중팔구는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상황일 것이고, 결국에는 팀 전체에 타격을 주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 다음 상황과 비교해 봅시다.
술퍼맨 : 저기, 홍춘이님.
홍춘이 : 왜요?
술퍼맨 : 정규식을 쓰다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시간 괜찮으세요?
홍춘이 : 네. 어떤 일이세요?
술퍼맨 : 이런 문자열을 잡아내려면 패턴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감이 잘 안오네요. 정규식이 익숙하질 않아서...
홍춘이 : 정규식이 어렵다고 느껴지세요?
술퍼맨 : 네...
홍춘이 : 일이 진행이 잘 안되어서 답답하시죠?
술퍼맨 : 네. 답답해요.
홍춘이 : 한 번 같이 볼까요? (들여다 본다) 호오... 어떤 시도를 해보셨어요?
술퍼맨 : "어쩌구 저쩌구"라고 넣어봤어요.
홍춘이 : 어떤 사고과정을 거쳐서 그런 시도를 하게 되셨나요?
술퍼맨 : 일단 요 부분은 고정되어 있으니까 그대로 쓰면 될 것 같아서 이렇게 했고, 여기가 좀 애매했는데요, 우선은 또는(or) 조건이니까 이렇게 해서요...
홍춘이 : 실제로 패턴 매칭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어떻게 확인하셨어요?
술퍼맨 : 간단하게 코드를 짜서 printf로 찍어봤거든요.
홍춘이 : 아, 그러셨군요. 많이 번거로우셨겠어요. 한번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술퍼맨 : 네. 하다가 보면 귀찮아서 확인 작업을 건너뛰기도 하고 그랬죠. (술퍼맨이 시연을 한다)
홍춘이 : 안되는 부분을 발견하시고는 다른 시도를 하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취하셨나요?
술퍼맨 : 우선 구글에서 검색을 해봤는데요.
홍춘이 : 어떤 키워드들로 검색을 해보셨나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홍춘이의 머리 속에는 어떤 그림이 떠오를까요? 술퍼맨이 어떤식으로 정규식을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는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결하려고 시도하는지, 자신의 답이 맞는지를 어떻게 확인하는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술퍼맨의 머리속 지도와 사고 모델을 엿보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뭐가 좋을까요?
왜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이런 접근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알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하고 효과적인 제안을 해줄 수 있습니다. 다 설명해줄 필요도 없고, 핵심적인 부분만 짚어주면 됩니다. 또, 소위 암묵지라고 부르는 것들을 전달해 줄 수도 있습니다(예컨대 본인은 정규식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쓰는 도구나 전략, 절차가 무엇인지 등).
이 방법은 누가 물어볼 때뿐만 아니라 누가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에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코칭/멘토링) 능력이 없는 팀장일수록 "비난"만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비슷한 일이 또 생기게 되죠. 훌륭한 팀장이라면 먼저 그 사람의 사고 과정과 전략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전문성 연구에서도, 전문가는 상황파악을 먼저하지만 초보자는 뭘 할지부터 정하려고 한다는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코칭까지 나갈 수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다음 대화를 한 번 보시죠.
홍춘이 : 정규식을 제대로 알고 잘 쓰고 싶으시군요?
술퍼맨 : 네.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언젠가 한 번 마음먹고 제대로 공부해야지, 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몇 달 째 미루고 있는 것 같아요.
홍춘이 : 정규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쓰는 것이 본인에게는 왜 중요하세요?
술퍼맨 : 제가 요즘 하는 일이 텍스트 추출이나 검색 같은 일들이 많은데 그런 일들을 정규식을 잘 쓰면 굉장히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홍춘이 : 아, 정규식을 통해서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싶으신 거군요.
술퍼맨 : 맞아요. 또 내가 뭔가 제대로 이해하고 쓴다는 느낌이 들면 더 편안할 것 같구요.
홍춘이 :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쓰고 싶으시군요. 좋습니다. 정규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를 0점이라고 하고, 정규식 도사가 10점이라고 한다면 본인은 현재 몇 점 정도 될까요?
술퍼맨 : 흠. 한 2점? 3점?
홍춘이 : 어떤 면에서 2점에서 3점 정도라고 하신 건가요?
술퍼맨 : 정말 간단한 정규식은 문제없이 쓸 수 있고요. 하지만 조금만 꼬인 정규식은 이해도 어렵고 작성도 잘 못해요. 또 원리를 명확하게 모르고요.
홍춘이 : 그럼 몇 점으로 올리고 싶으세요?
술퍼맨 : 한 7점만 되어도 좋겠어요.
홍춘이 : 좋아요. 7점이 되면 본인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요?
술퍼맨 : 일단 두려움이 없을 거에요. 어떤 정규식도 쓱쓱 쓸 수 있겠죠. 시간도 오래 안걸릴 것 같고요.
홍춘이 : 본인이 7점이 됐다고 상상해 보세요. 저나 팀장님 혹은 동료들은 뭐라고 할까요?
술퍼맨 : 흠. "역시 정규식하면 술퍼맨이지"하는 말을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동료들은 어려운 정규식 문제가 있으면 저에게 가져와서 물어볼 것 같아요. 고맙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겠죠.
홍춘이 : 사람들에게 전문가로 인정을 받고 싶으시군요. 전문가에 대한 열정이 뜨거우신 것 같아요.
술퍼맨 : 맞아요! 저도 뭔가 전문영역이 하나라도 생기면 참 좋겠어요.
홍춘이 : 그럼 지금 2 내지 3점에서 7점으로 가고 싶은 것인데, 일단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면, 7점으로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첫번째 액션은 뭘까요? 뭘 할 수 있으시겠어요?
술퍼맨 : 일단 책을 한 번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직 정규식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요.
홍춘이 : 좋은 아이디어네요.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책이 있으신가요?
술퍼맨 : 학부 때 사둔 책이 있긴 한데 아직 손도 안댔거든요. 우선은 그 책으로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홍춘이 : 언제부터 시작하실 생각이세요?
술퍼맨 : 다음달이면 마음에 여유가 생길 것 같은데, 다음달부터 해볼까 해요.
홍춘이 : 좋습니다. 다음달에 본인이 정말 그 책을 완독하게 될 확률이 몇 퍼센트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술퍼맨 : 어... 한 30% 될까요. 이제까지도 정규식 공부해야지 하면서 계속 미뤄왔거든요.
홍춘이 : 그 확률을 더 높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술퍼맨 : 어떻게 해야 하지?
홍춘이 : 같이 한 번 브레인스토밍 해볼까요?
술퍼맨 : 네!
홍춘이 : 예를 들어 오늘이 가기 전에 뭔가 액션을 취하는 걸로 바꾸면 어떻겠어요?
술퍼맨 : 네? 오늘은 여유가 없는데...
홍춘이 : 그러면 한 20분만 공부할 시간은 있으세요?
술퍼맨 : 네? 그 정도 시간이라면 가능한데요.
홍춘이 : 한 20분만 공부하고 뭔가 뿌듯함을 느끼는 방법이 있을까요?
술퍼맨 : 흠. 아! 제가 곤란을 겪은 "또는" 부분만 발췌해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홍춘이 : 좋은 아이디어네요. 혹시 그걸 오늘 읽고 공부했다는 것을 제가 확인해 드리면 좋으시겠어요?
술퍼맨 : 확인요? 어... 그러면 제가 실제로 공부할 확률이 높아지겠네요. 제가 밤에 읽고나서 이메일을 보내드릴까요?
홍춘이 : 네. 저는 밤 11시까지는 깨어 있으니까 그 전이라면 문자로 보내주세요. 오늘 읽으셨던 부분에서 자신이 알고있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던 부분이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 하나를 같이 보내주시면 어떻겠어요? 하실 마음이 드세요?
술퍼맨 : 좋아요.
홍춘이 : 그러면 이제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술퍼맨 : (신이 나서 말한다) 팔구십 퍼센트는 될 것 같은데요?
(참고로 이 정도의 대화면 10분 내외면 충분합니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훈련을 하면 더 잘 할 수 있고요. 참고로 코칭의 흥미로운 점은 코치 자신, 여기에서는 홍춘이가 해당 영역, 여기에서는 정규식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도 코칭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굳이 맨처음 소개 드린 홍춘이가 멘토링, 코칭 능력이 떨어지는 상황과 차이점을 비교해 드리지 않아도 직접 느끼실 것 같습니다. 두 경우 중에, 대화후 술퍼맨의 에너지 레벨이 높아지는 경우는 어느 것일까요? 술퍼맨이 자기주도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어느 것일까요? 술퍼맨이 어느 경우에 좀 더 책임감을 느낄까요? 홍춘이가 술퍼맨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도와줄 수 있는 경우는 어느 것일까요? 홍춘이와 술퍼맨의 관계가 더 좋아지는 상황은 어디일까요? 실제로 술퍼맨이 정규식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상황은 어느 것일까요?
제 코칭 경험에 따르면 피코치(coachee라고도 하죠)가 스스로 약속한 것을 지키는 확률은 거의 90% 대에 육박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코칭 대화를 하는 때부터 뭔가 느낌이 다르죠. 얼굴에 화색이 돌고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목소리도 밝아지고요. 나중에 실제로 피코치가 뭔가 해냈다고 자랑스럽게 문자 메세지를 보내는 걸 보면 저도 참 뿌듯해지지요.
이런 코칭을 본인이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매주 누군가가 이렇게 내 에너지 레벨을 높여주고 확인해주고 지지해주고 다독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사장이건, 팀장이건, 팀원이건 상관없이 코치를 구할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AC2 과정도 한 가지 방법이 되겠죠.)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