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국내에 보급되기 전에는 "컴퓨터 통신"이라고 불리는 것만 있었습니다. 주로 전화선을 이용해서 컴퓨터끼리 통신을 하는 것이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제게 컴퓨터 통신은 새로운 지평이었습니다. 첫 위기지학 프로그램을 떠올리다 보니 첫 컴퓨터 통신의 감격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더군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나름대로 저에게는 지금까지 지속되는 교훈을 준 사건이기도 하고요. (옛날 얘기 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지금 여기"에 아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요)

(사진 출처는 old-computers.com)

아마 1984년쯤이었을 겁니다. 외국 컴퓨터 잡지를 용케 구해서는 거기 나오는 광고를 보고 꿈을 꾸던 때였습니다. 애플에서 나온 광고가 있었습니다. "커플러"라고 하는 것인데 수화기를 끼우면(구멍이 두 개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디지털 신호를 소리로 바꾸고 반대로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서 통신을 하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속도가 300bps였나 그랬을 겁니다. 굉장히 부러웠지만 당시 초등학생이 그 장치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꼼수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쓰던 컴퓨터는 애플 컴퓨터였고,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테이프에 프로그램을 저장하고, 또 불러오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LOAD/SAVE라고 하죠(가물가물 합니다). 그 기능을 활용한 겁니다. 어차피 애플 자체에 소리와 디지털 신호를 번역해주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친구랑 미리 약속해 놓고 서로의 컴퓨터를 전화기에 연결했습니다. 제 쪽에서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예컨대 주석문에 제가 보내고 픈 메세지를 바로 쓸 수도 있었죠) SAVE를 합니다. 상대쪽에서는 신호가 들리기를 기다렸다가 LOAD를 합니다. 짠! 그럼 상대쪽에서 제가 보낸 메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걸 이용하면 채팅을 할 수도 있었죠.

실험은 성공이었습니다. 우리가 주고 받은 프로그램은 화면에 "Hello, World!"를 찍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 몸이 떨리더군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죠.

나중에 애플의 스펙을 찾아보고 계산을 해보니, 카세트 테이프의 LOAD/SAVE를 이용한 방식은 300bps를 훌쩍 넘는(600bps 가까이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꽤 훌륭한 모뎀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 판매된 모뎀이 있었는데, 800bps였나 그랬습니다. 애플 컴퓨터에 꽂아 쓰는 확장카드였고요. 그 모뎀을 사용하게 된 것은 아마 최소 1, 2년 지난 후였을 겁니다. (그 이후 다들 하듯이 1200, 2400 등의 수순을 밟게 되었죠)

저는 이 일화를 간혹 떠올려보곤 합니다. 내가 정말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걸로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만약 나에게 이미 해답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양일까? 하는 질문을 하면서요.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