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여러번 소개되었던 주당 16시간 일하는 프로젝트(주당 20시간 근무하는 회사, 애자일컨설팅에서 일해보니 등)에 대한 기사가 IBM 디벨로퍼 웍스에 실렸습니다. 제목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개발을 꿈꾸며 '일주일에 16시간만 일하기'입니다. 프로그래머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개탄하는 TV 뉴스(과로로 정신병이 걸릴 정도라니!)가 나오고 있는 실정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자니 좀 어색하기도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이런 이야기를 해야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희가 만약 효율적, 효과적으로 일을 했다면 과연 무엇 덕분일까를 고민해 봤습니다. 대담에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았는데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치를 만드는 일인가?
- 정말 가치 있는 일인가?
- 그렇다면 그 가치는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가치인가?
- 그렇다면 비슷한 수준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낼 방법은 없는가?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위 질문들을 늘,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질문을 자신과 서로에게 물었던 횟수와 우리가 그날 이룩한 성과 간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이런 질문을 거의 하지 않고 현재 하는 일에만 집중했던 시기는 바쁘긴 했지만 생산적이진 않았던 때였습니다. 즉, 질문을 안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상황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증후였습니다.
프로젝트 기간 중에 초과근무를 안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유일하게 초과근무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보다 2시간을 더 근무했던 날이었습니다(사람들은 통상 이 대목에서 야유를 보내더군요). 마지막 서너 시간 동안 아무도 위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일로 정말 가슴 깊은 반성을 했고, 그래서 다음날부터는 한 시간이나 두 시간에 한 번 씩 위 질문들을 되돌아보는 회고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그 전에는 하루에 한 번 씩 회고를 했었죠).
특정한 사람 하나(예를 들면 팀장)가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것은 팀에 큰 차이를 만들어 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모든 팀원들이 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바로 그 때 엄청난 차이가 생깁니다 -- 브라스밴드에서는 전원이 이 질문을 했다는 사실이 매우 감명 깊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가 "바쁘게 일하는" 최면에 홀려서 아무도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고 "일단 달리자" 모드에 빠져있는 경우가 있었고, 그 날은 어김없이 초과근무를 하거나 하루 종일 이룬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주당 16시간 밖에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위 질문들로 다시 회귀하는 현상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적게 일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전혀 다른 마인드셋을 갖게 했습니다. 우리들이 반성을 할 때 내뱉는 말은 예컨대, "(머리를 쥐어 뜯으며) 아, 오늘은 30분을 허비해 버렸어요!" 같이 일반적인 직장인과는 시간 스케일이 달랐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저희의 주당 16시간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책이 있습니다. The 4-Hour Workweek이라는 책입니다.

하루 4시간도 아니고, 주당 4시간입니다. 엄청나지요. 저희가 일할 때 사용했던 원칙들의 상당수가 이 책의 내용과 겹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이 책의 78쪽에 나오는 다음 질문은 정말 가슴을 후려칩니다.
- 심장마비를 겪어서 하루에 2시간 밖에 일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 두번째 심장마비를 겪어서 일주일에 2시간 밖에 일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다수는 이렇게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당 16시간이라니, 완전 달나라 이야기네.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니 신경 꺼야지"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IBM 디벨로퍼 웍스 대담에서 인용합니다.
나부군님 친구 분이 이 프로젝트 이야기를 듣고 부러워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정시 출퇴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해보니 일을 제 시간에 더 일찍 끝낼 수 있었고 회사의 동료들도 그걸 따라하면서 정시 출퇴근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회적 확산의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하는 일들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간단한, 그러나 강력한 변화는 정시 출퇴근입니다. 그 외에도 방법들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팀에서는 애자일이야기의 브라스밴드 관련 글을 읽고 자극을 받아서 저녁 5시 이전까지 업무를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퇴근하냐구요? 그 정도 변화는 어려워서, 우선은 저녁 5시부터 퇴근 전까지(아마 7시 정도 되겠죠?) 각자 자기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하루 4시간만 일하고 있습니다. 4시간 일하고 퇴근 하는 것은 아니고, 4시간만에 업무를 모두 끝내버리고, 나머지 4시간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나 기웃거리기도 하고,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휴식도 하면서 "놀다가" 온다고 합니다. 역시 브라스밴드에서 자극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실세계에는 인과관계를 뒤집어도 성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웃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웃는 표정을 지으면 행복해 지기도 합니다(우울증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생산적이고 효율이 높아야 하루 4시간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하루 4시간만 일하기 때문에 생산적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조금씩 적용해 나갈 수 있습니다. 꼭 주당 16시간 일하는 회사에 적을 둬야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