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글쓰기 공부는 맞춤법을 틀리지 않고, 유려한 표현을 쓰고, 올바른 단어를 쓰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서점에 나가 보아도 대다수의 글쓰기 책들이 맞춤법 책입니다. 그런 책들은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라는 본질적 문제에는 전혀 답을 주지 못합니다. 어휘력이나 맞춤법 같은 것은 중요하긴 하지만, 이제부터 소개할 원칙들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부차적입니다.
제 일 법칙 -- 다상량
저의 글쓰기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시기가 몇번 있습니다. 가만히 잘 생각해 보면 제가 관심을 갖고 많이 고민해 봤던(예를 들어 최소 6개월 이상 고민해 봤던)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던 시기라고 기억이 됩니다. 1주일 고민하고 쓰는 글에는 딱 고만한 힘이 실리기 마련이고, 아무리 향수로 도배를 해도 한번 읽어보면 속알맹이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 글을 아무리 조물락 거려도 큰 개선이 없습니다. 글의 질을 결정하는 기본은 필자의 고민의 양입니다.
따라서 제가 소개하는 글을 잘 쓰는 첫번째 원칙은
자신이 많이 생각해 본 것에 대해 써라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이 모두 6개월 이상의 고민을 통해 나온 것들은 아니고, 현재진행형인 것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영법칙 -- 에너지
하지만 이 원칙에 앞서는 영번째 원칙이 있습니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에 대해 써라
많이 고민해 본 것이건 아니건 뭔가 자신의 내면에서 에너지가 느껴지는 소재에 대해서 글을 써야합니다. 그런 글을 읽으면 문장력이 어떻건 간에 그 에너지가, 그 힘이 느껴집니다.
이 원칙에는 따름 원칙이 있습니다.
에너지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쓰면 독자를 죽일 뿐만 아니라 작가를 죽인다.
마지막 부분이 더 중요합니다. 작가를 죽입니다.
영법칙의 일반성
이 글쓰기의 영번째 원칙은 강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강연자 스스로 강연 내용을 재미있게 느끼지 않으면 강의를 듣는 사람도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강연의 모토는 "일단 우리 스스로 재미있자!"(저는 여러명이 같이 강의를 하곤 합니다)입니다.
따름 원칙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보죠. 강연자 중에는 자신의 강연 몇가지를 포트폴리오식으로 준비해두고 강연시 그 내용을 비디오테이프 복사하듯이 재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강연자 자신이 재미가 없습니다. 그 느낌이 언젠가는 청중에게도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평소 늘 말해왔던 주제를 똑같이 글로 옮기려면 이상하게 진도가 안나가고 힘아리가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저는 같은 내용의 강연을 반복해야 한다면 항상 뭔가 개선을 하고 중간에 약간의 즉흥적 부분을 추가합니다.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만드는 서비스에서 유용함을 느끼고 그 서비스를 좋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 개발자 같은 경우 개발자 자신만 만족하는 더 작은 울타리 속에서 일을 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XXX 기술을 썼다, YYY 언어를 사용했다, 퍼포먼스를 5% 높혔다 등등)
쓰기 싫은 주제로 꼭 써야한다면?
만약 별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주제에 대해 꼭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그 주제의 우산 아래에서 자기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걸 찾아야 합니다. 혹은 그 바깥 연결고리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못찾으면? 쓰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흥어시 입어례 성어악(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공자, 논어 泰伯篇
The stage of romance, the stage of precision and the stage of generalisation --Alfred North Whitehead, The Aims of Education 중 2장 The Rhythm of Education에서(공자의 이야기를 교육의 단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교육은 처음에 시적, 감정적 흥기가 우선이고 다음에는 예, 즉 규율과 규칙에 의한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후에는 음악에서 정확성과 예술적 감성의 통합이 이루어 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이론은 화이트헤드의 교육 철학과 거의 그대로 대응된다. 화이트헤드는 교육의 리듬이라는 에세이에서 교육 단계를 로망스의 단계, 정확성의 단계, 통합/일반화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김창준)
에너지 고갈자
공감은 하지만, 만약 주변에 에너지를 느낄만한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십중팔구는 없어서가 아니고 있는데 그걸 갈무리를 못해서 그렇습니다. 에너지의 흐름이 중요합니다. 제가 회고를 할 때 강조하는 것이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에너지의 흐름입니다. 예를 들어서 워크샵을 합니다. 끝나자 마자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속을 뛰어다닙니다. 잡아서 캔 속에 넣지 않으면 다 도망가 버릴 겁니다. 에너지의 흐름이 끊어지는 것이죠. 하루만 지나도 수십 마리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끝나고 한 시간 안에 회고를 합니다. 회고 한 내용은 종이나 위키에 옮겨서 기록합니다. 과거를 "언제나 현재"로 끌어올리는 것이죠. 다음에는 어떻게 새롭게 하면 좋을지 계획을 짭니다. 미래로까지 에너지가 연결되도록 하는 겁니다. 다들 워크샵을 하나 끝내고 나면 에너지를 느낍니다. 아, 이거 정말 실수했군, 그건 정말 잘 한 것 같아!! 등등. 이 에너지를 살려가야 합니다.
간단한 메모장과 조그만 펜을 휴대해 다니세요. (제가 정말 여러가지 메모장과 펜을 실험해 봤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를 알려드리지요.) 뭔가 내 속에서 감정의 변화가, 에너지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하는 낌새가 있으면 바로 메모를 하세요. 지하철이건 침실이건. 나중에는 이렇게 메모했던 것들이 전혀 예상 못했던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서 새로운 글감이 됩니다.
갈무리도 문제가 아니라는 분들은? 두가지가 가능합니다. 자기를 바꾸거나 환경을 바꿉니다.
환경 바꾸기는 의외로 쉽습니다. 새로운 공연을 보거나 오랫 동안 안만났던 사람을 만나거나 새 옷을 입어보거나, 길 고양이를 따라가 보거나, 해당 주제에 대해 나에게 가장 도움을 못줄 것 같은 사람과 대화해 보거나 등등.
자기 바꾸기는 의지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돈은 덜 듭니다. 늘 경험했던 것이지만 속도를 늦추거나 혹은 더 빠르게 해봅니다. 더 집중하거나 덜 집중해서 해봅니다. 예를 들어 아무 의미 없는 선을 그리는 낙서(전화할 때 한손으로 찍찍 긋듯이)를 아주 천천히 그리고 매우 집중해서 꽤 오랜 시간 동안(예컨대 한 시간) 해본 적이 있으세요? 저는 해봤습니다. 머리 근육이 비틀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매일 정신없이 빨리 걸어가던 길을 휴일 오후 한적할 때에 천천히 한 번 걸어가 보세요. 길바닥에 벌레가 기어가면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 구경도 하고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잘 살펴보면서.
지금 당장 하나 실험해 봅시다. 한 손에 노트를 다른 손에 펜을 듭니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자기가 있는 곳(방이건 사무실이건)을 천천히 둘러봅니다. 각도를 아주 조금씩 이동하면서 그 각도에 무엇이 있나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걸 보면 뭔가 내 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는 대상을 포착합니다. 그 느낌을 간단하게 종이에 적습니다. 생각보다 글감이 많다는 데에 놀라실 겁니다. 그 중에는 분명 느낌이 미약하고 에너지가 충분하지 못한 것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놈들을 잘 갈무리하고 가끔 물도 주고 접붙이기도 하면서 재배해 보세요. 혹시 모르잖습니까, 그중 거목이 나올는지도.
다작
여기까지 제 글을 읽으신 분 중에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6개월 이상 고민하고 글을 써야 하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글감을 찾아야 하려면 글 쓰는 기회가 줄 것 같은데, 그러면 훈련이 되나?' 적절한 지적입니다. 글을 잘 쓰는 방법 중 제가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자주" 글쓰기 입니다. 앞서의 원칙들과 충돌하지는 않냐구요? 아닙니다.
사고의 도구로서의 프로그래밍에서 말했듯이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고민을 숙성시키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고민을 진행시키고 결정화하고 정리하며 견고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머리 속에서는 이 주제는 내가 잘 아는 것이지 싶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고 하면 쉽지가 않고, 쓰는 과정 중에 자신이 이해한 개념이 명료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통상 어떤 개념을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면 자신이 그 개념을 깊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런 자각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좀 더 체계화하게 되죠. 한가지 첨언한다면, 고민을 숙성시키기 위해 글을 쓸 때에는 남들에게 어떻게 멋지게 보여줄까에 신경쓰지 말고, 최대한 쉽고 명료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작가의 걸림돌(Writer's Block)을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쓰는 겁니다. 쓰는 행위 자체가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유지시켜주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글을 자주 쓰면 선순환이 됩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 글이나 그냥 자주 쓴다고 훈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매일 블로깅한다고 절대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자기가 에너지를 느끼는 대상, 자기가 할 말이 많은 대상에 대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온전히 드러내는, 그 자체로 완결성 있는 글을 자주 써봐야 합니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온전히 드러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네가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뭔데?"라는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글은 자신의 '한 문장'을 온전히 그리고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아이디어가 너무 크다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습니다. 우선은 큰 아이디어보다 작은 아이디어를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자연석 글쓰기
마지막으로 책 추천을 한 권 해드리겠습니다. 앞에서 "글을 도대체 어떻게 써야하는가?"라는 질문에 생성적(generative)인 답을 해줄 수 있는 책입니다.
Weinberg on Writing이라는 글쓰기 책이 있습니다. "압권"입니다. 말 그대로 다른 글쓰기 책 위에 이 책을 놓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자연석 방법(Fieldstone Method)입니다. 제가 추천하는 원칙들과 연결됩니다.
돌멩이로 집 주변에 자연석 벽을 만들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먼저 만들 벽의 설계도를 그리고 필요한 돌들을 정한 다음, 당장 채석장이나 산에 가서 필요한 돌을 모두 가져와서 쌓기 시작하면 될까요? 저자인 제랄드 와인버그(Gerald Weinberg)는 그런 식으로는 벽을 쌓을 수 없다고 합니다. 대신 자연석 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연석 방법이란 이러합니다. 옆 집에 놀러가다가 길가에서 우연히 맘이 끌리는 돌을 발견하면 집에 가지고 옵니다. 등산 갔다가 예쁜 돌을 보면 또 들고 옵니다. 집 한켠에 그런 돌들을 쌓아 놓습니다. 그러다가 아 요놈이랑 저놈이 궁합이 잘 맞겠네 싶으면 그 돌들을 사용해서 벽을 조금 쌓아 올립니다.
그래서 저자는 평소에 자연석들을 많이 모아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글쓰기가 훨씬 즐겁고 수월해진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자연석 방법은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의 학습법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연석을 얼마나 모아 놓으셨나요?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