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에서 꽤나 인기를 끌던, 집 개조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러브하우스라고 초기에는 신동엽이 진행을 했죠. 나중에는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본적인 구조는 매 회 동일했습니다. 누가 어려운 사정을 적어서 방송국에 보내면, 그 중 "방송화해서 잘 팔릴만한 것"을 골라, 그 집을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함께 방문합니다. 그 때 "고치기 전" 상태를 촬영하고, 얼마 동안 집을 뜯어 고칩니다. 그리고 그 집안 식구들은 공개하는 날 처음으로 변한 모습을 보게 되며, 카메라는 각 방을 순회하며 짜잔과 어머머머, 그리고 우와아아를 반복합니다. 눈물도 흘리고 감동의 도가니이죠.

저는 이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잘못된 관념입니다.

그 집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철저히 감춰진 상태에서 공사를 합니다. 그리고 완공한 날 최초이자 마지막 공개를 합니다. 그럼 끝. 집을 고치거나 만드는 과정에서 그 집에 실제로 살 사람은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아, 있긴 합니다. 디자이너의 마음 속에.

TV 방영시 극적 효과를 위해 그렇게 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당사자들이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지 의문이 듭니다. 첫 눈에 보고 "이야 놀라워요, 신기해요"하는 집이 정말 좋은 집인가? 그 사람들이 러브하우스 이후 1년 뒤, 2년 뒤에는 어떤 느낌을 가질까? 궁금합니다.

전문화, 대량생산 등이 집과 거주자의 거리를 떨어뜨려놓았습니다. 거주자는 건축을 모른다, 집에 대해 아는 게 없다가 전제입니다. 건축가가 전문가이고 그 사람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전문가가 만들어 주니 어련히 좋겠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잡지 중에 Fast Company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경영 관련 잡지인데 꼭 경영하는 사람 뿐 아니라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만한 글들이 많습니다. FC에서 10주년 기념으로 Fast Company's Greatest Hits : Ten Years of the Most innovative Ideas in Business라는 책을 냈습니다. 훌륭한 기사들만 따로 모아서 책으로 낸겁니다.


몇 달 전에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습니다. 그 중 "We Take Something Ordinary and Elevate It to Something Extraordinary"라는 2000년 11월호에 실린 기사가 퍽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네, "감동적"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나시는 분들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사회적, 교육적, 경영적, 환경적인 면에서 모두 계발을 받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무엘 막비라는 건축과 교수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희망을 짓는 건축가 이야기 : 사무엘 막비와 루럴 스튜디오"라는 번역서가 나와 있기도 합니다. 제가 2005년 년말에 서점에서 우연히 봤던 책인데 당시에는 이 책에 그렇게 강력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잘 몰랐습니다.

(문 옆에 서있는 수염난 아저씨가 막비입니다)

책 날개에서 막비의 소개를 일부 옮겨 보겠습니다.

1991년 오번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임명되자마자 학생들을 모아 '루럴스튜디오'를 열었다. 건축이 사회, 환경, 교육과 연결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던 그는 학생들과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라고 할 수 있는 앨라배마주 헤일에서 놀이터, 야구장, 개인 주택 등을 지으며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하는 존경 받는 건축가가 되었다. 재료로는 주로 자동차 번호판, 폐타이어, 골판지 상자, 도로표지판 등 재활용한 것들을 사용했다. 그만큼 경제적이고 견고한 건축물을 설계하고 직접 시공했다. ...

루럴스튜디오는 학생들이 먹고 자는 곳입니다. 학생들은 이곳에 살면서 인근 동네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지요. (이 방식은 현 교육의 한가지 대안적, 혹은 보조적 모델이 될만 합니다.) 학생들에겐 생활 자체가 수업입니다.

무료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짓거나 고쳐준다는 점에서 러브하우스와 비슷한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이겁니다. 감췄다가 마지막에 짠 하고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 집에 원래 살던 사람들과 같이 한 동네에 살던 대학생들이 집을 개축해 주며, 또한 개축 시기에는 직접 거주자들과 숙식을 함께 합니다. 같이 설계도 하고 같이 돌도 나릅니다. 즉, 만들어 주는 자와 사용하는 자는 하나의 공동체(commune)로 묶여 있습니다 -- 개발 기간 전, 중, 후에 걸쳐 모두.

사실 TV의 오락물인 러브하우스를 감히 막비의 루럴스튜디오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일지도 모르네요.

자, 여기에서 하나 더 생각할 거리. 집을 소프트웨어로 바꾸고, 거주자를 사용자, 건축가, 시공사를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바꾸면?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라는 사람은 거주자와 건축가 사이를 좁히는 노력의 일환으로 패턴 언어라는 것을 만들었으며 이 아이디어는 소프트웨어 설계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발 방법론의 "현장 고객" 개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또, 이 글 중에는 "건축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소프트웨어 개발의 사회적 책임은? 프로그래머의 사회적 책임은? 나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심오하고도 중요한 질문들입니다.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