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잘못된 관념입니다.
그 집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철저히 감춰진 상태에서 공사를 합니다. 그리고 완공한 날 최초이자 마지막 공개를 합니다. 그럼 끝. 집을 고치거나 만드는 과정에서 그 집에 실제로 살 사람은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아, 있긴 합니다. 디자이너의 마음 속에.
TV 방영시 극적 효과를 위해 그렇게 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당사자들이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지 의문이 듭니다. 첫 눈에 보고 "이야 놀라워요, 신기해요"하는 집이 정말 좋은 집인가? 그 사람들이 러브하우스 이후 1년 뒤, 2년 뒤에는 어떤 느낌을 가질까? 궁금합니다.
전문화, 대량생산 등이 집과 거주자의 거리를 떨어뜨려놓았습니다. 거주자는 건축을 모른다, 집에 대해 아는 게 없다가 전제입니다. 건축가가 전문가이고 그 사람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전문가가 만들어 주니 어련히 좋겠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잡지 중에 Fast Company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경영 관련 잡지인데 꼭 경영하는 사람 뿐 아니라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만한 글들이 많습니다. FC에서 10주년 기념으로 Fast Company's Greatest Hits : Ten Years of the Most innovative Ideas in Business라는 책을 냈습니다. 훌륭한 기사들만 따로 모아서 책으로 낸겁니다.

몇 달 전에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습니다. 그 중 "We Take Something Ordinary and Elevate It to Something Extraordinary"라는 2000년 11월호에 실린 기사가 퍽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네, "감동적"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나시는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사회적, 교육적, 경영적, 환경적인 면에서 모두 계발을 받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무엘 막비라는 건축과 교수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희망을 짓는 건축가 이야기 : 사무엘 막비와 루럴 스튜디오"라는 번역서가 나와 있기도 합니다. 제가 2005년 년말에 서점에서 우연히 봤던 책인데 당시에는 이 책에 그렇게 강력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잘 몰랐습니다.

(문 옆에 서있는 수염난 아저씨가 막비입니다)
책 날개에서 막비의 소개를 일부 옮겨 보겠습니다.1991년 오번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임명되자마자 학생들을 모아 '루럴스튜디오'를 열었다. 건축이 사회, 환경, 교육과 연결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던 그는 학생들과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라고 할 수 있는 앨라배마주 헤일에서 놀이터, 야구장, 개인 주택 등을 지으며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하는 존경 받는 건축가가 되었다. 재료로는 주로 자동차 번호판, 폐타이어, 골판지 상자, 도로표지판 등 재활용한 것들을 사용했다. 그만큼 경제적이고 견고한 건축물을 설계하고 직접 시공했다. ...
루럴스튜디오는 학생들이 먹고 자는 곳입니다. 학생들은 이곳에 살면서 인근 동네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지요. (이 방식은 현 교육의 한가지 대안적, 혹은 보조적 모델이 될만 합니다.) 학생들에겐 생활 자체가 수업입니다.
무료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짓거나 고쳐준다는 점에서 러브하우스와 비슷한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이겁니다. 감췄다가 마지막에 짠 하고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 집에 원래 살던 사람들과 같이 한 동네에 살던 대학생들이 집을 개축해 주며, 또한 개축 시기에는 직접 거주자들과 숙식을 함께 합니다. 같이 설계도 하고 같이 돌도 나릅니다. 즉, 만들어 주는 자와 사용하는 자는 하나의 공동체(commune)로 묶여 있습니다 -- 개발 기간 전, 중, 후에 걸쳐 모두.
사실 TV의 오락물인 러브하우스를 감히 막비의 루럴스튜디오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일지도 모르네요.
자, 여기에서 하나 더 생각할 거리. 집을 소프트웨어로 바꾸고, 거주자를 사용자, 건축가, 시공사를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바꾸면?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라는 사람은 거주자와 건축가 사이를 좁히는 노력의 일환으로 패턴 언어라는 것을 만들었으며 이 아이디어는 소프트웨어 설계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발 방법론의 "현장 고객" 개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또, 이 글 중에는 "건축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소프트웨어 개발의 사회적 책임은? 프로그래머의 사회적 책임은? 나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심오하고도 중요한 질문들입니다.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