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회의 방침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영상을 봤습니다. 이 영상이 최근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된 것 같습니다. 관련해 기사도 났습니다. 영상에 나오는 문 대통령의 발언 중에 정말 "대단히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나와서 아래에 그대로 옮겨적고 각주를 달아 봤습니다.

"수보 회의는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회의가 아닙니다. 다함께 공유하고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는 회의......"(1)

비서실장: "대통령님의 지시사항에 대해서도 이견이 나왔을 때 얘기할 수 있습니까?"(2)

(일동 웃음)

"근데 그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3). 격의 없이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는 그런 기회를 못갖게 되는 거죠. 잘못된 방향에 대해서 한번 이렇게 바로 잡을 수 있는 최초의 기회가 여긴데(4), 대통령 지시에 대해서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해야할 의무입니다(5). 그래서 인제 이렇게 될라 그러면 아주 격의 없는 토론이 필요한데, 미리 정해진 결론 없고(6), 발언에 군번도 없고. 대통령의 참모가 아니라 국민의 참모다, 그런 생각으로 자유롭게 말씀해주셔야 됩니다.

......

이 자리에서는 잘 모르면서 당당하게 하는 이야기까지도 하셔야 된다는 겁니다(7). 뭔가 그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냥 느낌이 조금 뭐 좀 이상하지 않냐 상식적으로 좀 안맞지 않냐 이런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해주셔야(8), 그야말로 자유로운 토론이 됩니다."


(1) 회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집단 지성으로부터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지 누가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럴 경우 회의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이 많습니다. 굳이 회의의 흉내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공유하고 토론하는 형태가 효과적입니다.

(2) 비서실장이 회의 중에 이런 저돌적인 질문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함축적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앉아 있는 회의에서 어느 정도의 심리적 안전감이 보장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이 질문을 듣고 그 자리의 다른 사람들은 농담 정도로 생각하며 웃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달라 보입니다.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문재인이 이런 심리적 안전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초기에 자신의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4) 뭔가 회의에서 결정이 나면 그 결정이 고치기 힘든 것으로 느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은 해당 결정이 불변의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그만큼 비용투자를 했다는 소위 매몰비용(sunk cost) 편향이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일찍 오류를 감지하고 바로 잡는 것(early detection & quick recovery)이 유리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모범이 되어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오류를 바로잡는 것을 덜 불편해하게 됩니다.

(5) 항공과 의료 쪽 중에 안전 면에서 어느 쪽이 더 앞섰을요까. 당연히 항공입니다. 전문가들은 항공이 수십년 앞서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항공연방청의 ASRS 데이터베이스 같은 자료의 누적 덕분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를 통계분석해보면 항공사고의 거의 대부분이 누가 해야할 말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옵니다(그건 기장님이 알아서 하겠지 같은). 항공 사고를 피하려면 사람들이 할 말을 해도 "되는" 정도가 아니라 할 말은 마땅이 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공적 팀의 요인에 대한 메타분석에서도 보면 소위 상호 퍼포먼스 모니터링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나옵니다. 이건 상대가 일하는 거에 대해 묻고 딴지 거는 걸 말합니다. 근데 이것은 좋은 팀이 되려면 해도 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다. 남의 일에 관심 갖고 참견하는 것은 좋은 팀이 되는 데 팀원으로서 의무적인 요소입니다.

(6) 정해진 결론이 없는 회의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이 회의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느낄 때에도 회의를 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리 데이터 수집을 다 하고 분석하고 결론까지 내서 회의를 하지 않으면 비난 받고 공격 받을까봐 두려워서 회의를 여는 골든 타임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늦게 열리는 회의는 새로운 정보를 얻지 못합니다. 정해진 결론 없이 여는 회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뭔가 방향이 생기기 전에 일찍부터 회의를 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7) 잘 모르면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하려면 앞서 계속 이야기한 심리적 안전감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심리적 안전감은 내가 의견을 내거나 질문을 할 때 비난 받지 않으리란 믿음을 말합니다. 같은 병원 안에서도 이 심리적 안전감의 차이가 병동별 사망률을 예측합니다. 이걸 높이려면 우선적으로 높은 위치(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심리적 안전감이 높다)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8) 잘 모르지만 느낌이 이상할 때 당당하게 이야기하라는 부분도 매우 중요합니다. 미 백악관의 전쟁상황실을 재설계한 인지심리학자 게리 클라인이 자신의 책 <통찰>에서 역설하는 부분입니다. 성과는 실수를 줄이는 것과 통찰을 늘리는 것이 합해져서 나타납니다. 하지만 많은 조직은 실수를 줄이려고 하면서 통찰까지 줄이느라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 게리 클라인의 분석입니다. 통찰은 기본적으로 뭔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탐구를 계속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확실성을 초기 단계부터 강조하면 통찰은 사라집니다. 9/11 공격 두달 전에 이를 미리 감지한 FBI 특별 수사관은 몇 명의 아랍인 남성이 비행 교육을 받았지만 이륙과 착륙 교육을 빼먹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를 이상하게 여겼고,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했지만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고 중간에 걸러져버렸습니다.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