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은 기업이 인재상으로 꼽는 덕목이 무엇이었을까요? 한 번 맞춰보세요. 아마 대부분 감을 잡을텐데,
"성실성, 책임감"(39.0%)이 일등이었습니다(p. 2).
어찌 보면 좀 김빠지는 조사입니다. 결과가 너무 상식적이니까요. (그렇지만, 신입사원 선발시 인재상과의 부합도 평가를 위해서 심층면접(90.2%)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데(p. 4) 아이러니하게도 면접으로 성실성을 평가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 등 비판적으로는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연구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실성이라는 것이 뭘까요? (책임감은 성실성의 하위 요소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하 성실성으로 통일하겠습니다)
성격 연구에서 현재 가장 권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빅파이브(Big Five, 성격을 크게 5가지 요소의 조합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림) 이론에서는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네라고 대답한다면 성실성(conscientiousness)이 높은 것으로 봅니다:
- 일하는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하는가
- 자신이 한 약속을 잘 지키는가
- 계획을 충실히 따르는가
- 성취를 위해 최고의 노력을 하는가
- 유혹을 잘 참고 견디는가
그럼 기업에서도 무조건 성실성 높은 사람만 뽑으면 장땡일까요? 성실성이 좋기만 한 것일까요?
인생의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성실성에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다니엘 네틀은 자신의 책(Personality 성격의 탄생으로 번역)에서 성실성의 양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이득: 계획 세우기, 자기 컨트롤
- 비용: 경직성, 즉흥적(spontaneous) 반응의 결여
자, 이번에는 흥미로운 연구를 하나 봅시다.
르핀이라는 학자가 동료들과 했던 연구(Lepine, J. A., Colquitt, J. A. and Erez, A. (2000), Adaptability to Changing Task Contexts: Effects of General Cognitive Ability, Conscientiousness, and Openness to Experience. Personnel Psychology, 53: 563–593)인데 피인용수가 300여 회에 달할 정도로 중요한 논문입니다.
이 실험에서는 피실험자들(경영학 수업을 듣는 73명의 대학생)에게 레이더에서 적기의 위협정도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결정하는 의사결정 퍼포먼스를 측정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주어진 상황에서의 퍼포먼스만 측정한 것이 아닙니다. 총 75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처음 25문제를 풀고 나면 이 게임의 규칙이 (피실험자에게 드러나지 않게) 바뀝니다. 그리고 다시 25문제를 더 풀면 한 번 더 바뀌게 됩니다. 이런 변화 상황 하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봤습니다. 다른 연구들보다 한 두 걸음 더 나아가 본 것이죠.
편의상 처음 25문제를 1구간, 그다음 25문제를 2구간, 마지막을 3구간으로 부르죠.
1구간의 성적이 2, 3 구간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만 그다지 높은 상관성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약 20%의 분산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와 3 구간 사이에는 매우 높은 상관성을 보였습니다. 52%의 분산을 설명했습니다.
이건 무슨 이야기냐면 1) 인지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잘 푸는 것과 그런 문제에서 2) 상황이 바뀔 때 빨리 적응해서 잘 푸는 것(이 경우, 재학습relearning과 동시에 이미 학습한 것을 비워내는 것unlearning이 필요)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이죠.
또 달리 말하면, 위 1)을 잘 예측할 수 있는 인자와 2)를 잘 예측할 수 인자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일반 요소로서의 지능(g factor)이 1)과 2) 모두에 관련이 있기는 합니다만(즉, 지능이 높으면 변화 전, 변화 후 모두 성과 좋음), 1구간 이후, 즉 최초 변화 이후의 성과에 최소 지능 이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성실성이었습니다(그외에 개방성에 대한 부분이 있지만 본 글에서는 논외로 보고 생략). 이 부분은 저자들도 예상을 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정작 놀란 것은 방향성이었습니다.
성실성이 높으면 상황 변화 후의 점수가 오히려 떨어지는 음의 관계를 발견했습니다.
특히 성실성의 하위요소 중에 믿을만한 사람인가(dependability) 하는 부분이 음의 관계를 갖고 있었는데:
- 말,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고 (deliberation) :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고, 말할 때 주의 깊게 하고, 유혹을 쉽게 참고 압박감 하에서 차분하게 있을 수 있고
- 일처리를 할 때 정리정돈을 잘해 체계적으로 하며 (order) : 질서 좋아하고 정리하기 좋아함, 계획에 맞춰 일하려고 함, 규칙성을 좋아함
-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책임감있게 하는 (dutifulness) :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 규칙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 제 때 맞춰 돈 내기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 in times of change, individuals scoring high on the dependability facets might focus their attention on maintaining order (or even imposing order prematurely in the face of change) before the new situation was completely understood. (p. 583)
믿음직스러움 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개인들은 변화의 시기에 새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주의를 집중한다(혹은 변화에 직면해 심지어 성급하게 질서를 억지로 밀어넣는다).
(번역은 김창준)
최근 전문성 연구에서는 전문성에는 정해진 일을 반복적으로 효율적으로 잘하는 전문성(routine expertise)과 새롭고 바뀐 상황에 잘 적응하는 전문성(adaptive expertise)이 있음을 구분하고 있으며, 특히 후자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이 적응 전문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기업 환경에서도 이 적응 전문성의 위상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고요. (따라서 AC2 과정도 이 적응적 전문성 향상을 위해 특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직원채용에 있어 성실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모든 직원을 소위 성실한 사람으로만 뽑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무래도 적응력 부분이 부족한 불균형이 생길 것이고, 현재 일처리에는 최적이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조직은 존폐의 위험을 겪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신뢰도가 매우 높은 조직(Highly Reliable Organization이라고 함. 수술 사고가 거의 없는 외과 수술팀 등)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특히 회복력(resilience)이 강하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복력은 다양성을 전제로 합니다.
복잡성 연구자인 존 카스티는 자신의 책 X-Events(X이벤트로 번역)에서 현대 사회가 극단적인 사건(x-event) 앞에 취약함을 강조하며 거기에 준비하기 위한 원칙의 하나로 다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now we come to the most important complexity principle of all ... the variety in a regulatory system has to be at least as great as the variety of the system it's supposed to regulate if it's to do its job. (p. 56)
이제 가장 중요한 복잡성 원칙을 이야기 하겠다... 조정하는 시스템의 다양성은 최소한 자기가 조정하려는 시스템의 다양성보다 같거나 커야만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번역은 김창준)
이 원칙은 원래 애쉬비라는 사이버네틱스 학자가 만든 원칙으로 애쉬비의 필수 다양성의 법칙으로 불립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A라는 시스템을 통제하려면 나 자신이 최소 A만큼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원칙에서 볼 때, 전 직원이 성실한 사람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변화 적응력이 높은 사람이 부족하다는 면에서 변화에 허약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변화에 허약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는 좀 다른 주제일 수 있는데 다음 기회에 좀 더 이야기하도록 하죠)
인재채용에서 기준선은 무작위 과정(random process)입니다. 즉, 지원자들 중에 눈감고 뽑은 경우에 비해 우리의 현 채용과정이 더 효과적인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겁니다. 실상 보면 이 무작위 과정보다 못한 채용을 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 수년 동안 IT 기업의 채용 컨설팅을 해오면서 저보다 채용 담당자들이 충격을 받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분석 결과, 무작위 과정보다 못한 채용 과정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여러분의 회사는 적응력이 높은 사람을 떨어뜨리는 데에 최적화 되어 있지는 않나요? 한번 자문해 볼 일입니다.
--김창준
p.s. 이 글과 관련하여 지피지기라는 글의 일독을 추천합니다. KAI에서 A-I 연속선은 성실성과 상관성이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방향이 어떨지는 여러분께 과제로 남겨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