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월요일에 11월 Xper 정모가 있었습니다. 이번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후기를 써주셨습니다. 아쉽게도 참석을 못하신 분들은 후기를 보시면 간접적으로나마 그날의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다른 분들이 후기를 많이 올려주셔서 간단하게 감상 위주로 몇 마디 적겠습니다.


고성원 (게임 개발)

우선 고성원님의 발표. 국내외 상당한 성공사례로 알려진 게임(스페셜 포스)의 개발팀 이야기입니다. 발표 시작 때 보여주신 자연농법을 하는 농부의 "흙"에 대한 믿음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분이 세계 최고의 스크럼 마스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고성원님이 말씀해 주셨을 때 고성원님에게 사람에 대한 믿음, 그리고 사람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이후 자세한 사례 소개에서 팀원들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를 존중하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도와주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권한위임(empowerment)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에 있어 위키위키를 통한 지식공유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위키 엔진으로 Confluence를 여러번 언급하셨는데, 같은 도구를 쓰면서 전혀 지식공유가 안되는 회사도 여럿 봤습니다. 뭔가 비밀 소스(secret sauce)가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고성원님 팀의 경우는 신뢰와 공동체의식(우리는 한 팀이다) 등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에 고성원님께 좀 독특한 질문을 했습니다. "저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수정구가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으시죠. 프로젝트 종료일의 광경이 여기 보이네요. 어? 사장님이 노발대발합니다. 팀을 해체하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고 팀장님과 팀원들 모두 뭐 씹은 표정입니다. 처참한 실패입니다. 그런데 제 수정구가 성능이 딸려서 그 사이 기간은 보여주질 못하네요. 어떤 이유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발표 중에는 시간이 없어서 답변을 못하셨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들었던 것은 다음 두가지 입니다: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혹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계신지가 듣고 싶었는데 그건 못들었네요. XPER 메일링리스트에서 이런 위험을 약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민신현 (SI업)

다음은 민신현님의 발표입니다. 20명이 6개월 걸려서 할 프로젝트를 5명이 3개월만에 끝낼 수 있었다(심지어 2주씩 휴가를 주면서도)고 초두에 충격을 주셨죠.

개발자들에게 오늘 할 일 끝내면 일찍 퇴근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걸 지켜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후 1, 2시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PM 입장에서 상당한 용기와 자기 확신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부분은 애자일을 딱히 공부하지 않으시면서 애자일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나름의 방법들을 만들어내셨다는 점입니다. 이 때 참고하셨던 책들이 게임 이론에 대한 책(발표 중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을 언급하신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게임 이론에 대한 책이 이 책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겠죠), 이너 게임, 그리고 뇌에 관한 책이라고 했습니다.

언급하셨던 것들 중 테스트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아키텍춰, 자동화된 회귀 테스트, 문서 작성을 최대한 자동화하는 부분, 짧은 이터레이션, (UI) 프로토타이핑의 활용, 개발 진도를 퍼센트가 아니라 단위별 완결, 미완으로만 구분하는 점, 개발 계획을 초반에 다 만들지 않고 점진적으로 상세화하는 것, 아침의 비공식적 공유회  등은 애자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방법들과 거의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애자일을 잘 모르시면서 군수산업(전투기 제조)이나 몇 권의 다른 분야 책에서 얻은 통찰로 이런 것들을 도출하신 점이 감탄스럽습니다.

하지만, 민신현님이 도출하신 방법들이 애자일과 충돌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단위 테스트를 PM이 모두 작성하고 개발자들에게 나눠주고 통과하게끔 요구하는 부분은, 애자일에서는 개발자들이 직접 작성하게 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과 다른데 이런 부분들에서 차이가 보였습니다. 개발자들이 초기에는 로직을 안만들고 상수값 리턴하게 해놓고 일 다했다고 일찍 퇴근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 걸로 보아 단위 테스트가 일종의 관리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개발자들이고, 신뢰도 없고, 교육에 대한 투자 여유도 없고 한 상황 하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일종의 명령과 제어(Command & Control)과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의 중간형태가 아니었나 싶네요. 다만 민신현님이 너무 고생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중간에 입원도 하셨다고...). 또 반대로 그만큼 성취감도 크셨으리라 생각이 드네요.

민신현님 팀에서도 고성원님 팀과 같이 위키위키 등을 통한 지식공유가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끝나고 팀원들과 헤어지면서 그들에게서 "감사합니다"라는 이야기도 듣고 작은 선물을 받기도 했답니다. SI업 10년 가까이 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 간의 신뢰를 일궈낸 것[주1]이죠. 동기와 용기, 그리고 지혜를 가진 PM 한 사람이 무엇을 이뤄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주1] 정반대되는 사례도 말씀해 주셨는데, 날짜 관련 모듈에서 12월 32일이 나오길래 개발자를 불러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답이 "(12월 32일 나오면 안된다고) 말씀 안하셨잖아요"였답니다. 참고로, 사회자본(social capital)에 있어 신뢰(및 이를 통한 자율성)가 얼마나 중요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효율화할 수 있는지 연구가 많이 되어 있습니다.
SI 같이 정말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이런 사례를 만들어 내신 점 참 존경스럽고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민신현님과 같이 용기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의 SI업계 문화가 점차 바뀌어나가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탁월한 팀장의 비밀

자 그럼 마지막으로 이 글의 부제인 탁월한 팀장의 (한가지) 비밀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수년전 제가 모 기업에서 개발자 300여명을 조사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설문조사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단체 워크샵, 참여관찰 등을 병행했습니다. 업무 만족도를 측정했는데 1점이 매우 불만족, 2점이 불만족, 3점이 그저 그렇다, 4점이 만족, 5점이 매우 만족이었고, 전체 평균은 2점과 3점 사이에 위치했습니다(보통 개발자들 업무 만족도가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조직에서도 아웃라이어가 있더군요. 만족도 평균이 4.9점이 넘는 팀(팀원은 10명 정도)이 있었습니다. 놀라운 수치이죠. 실제로 조직에서도 높은 성과를 내는 팀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고요. 그 팀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오늘은 하나만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팀장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제가 하는 일요? 팀원 세뇌시키는 겁니다. 너희가 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다. 너희가 없으면 이 회사는 망한다. 이런 세뇌를 매일 시키고 있습니다."

--김창준

p.s. 갑작스런 발표 부탁에도 흔쾌히 응해주신 고성원, 민신현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