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일 같은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하는 사람들이 자주 묻는 것 중 하나는 상향식이 좋냐 하향식이 좋냐 하는 질문입니다. 상향식은 버텀업(Bottom-Up)에 대한 번역어로 풀뿌리 방식이라고도 하는데, 조직의 피라미드 밑단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 위로 거슬로 올라가면서 변화가 진행되는 걸 말합니다. 하향식은 탑다운(Top-Down)에 대한 번역어인데, 맨 위에서 변화가 시작되어 점차 아래로 내려오며 결국 밑 바닥의 사원들까지 변화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사실 둘 중 무엇이 좋냐는 질문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당신은 아내를 때리는 일을 중단했나요?"라는 질문이 그런 예인데, 예라는 대답이나 아니오라는 대답이나 둘 다 "나는 아내를 때리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비록 예라고 대답하면 지금은 안 때린다는 말이 되긴 하지만). 만약 상향식과 하향식 중 어느 것이 좋냐는 질문에 둘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변화도입에 대한) 전문성을 의심해보셔도 됩니다.

보통 이상주의자들은 상향식을 지지하고, 현실주의자(혹은 냉소주의자)들은 하향식을 믿습니다. 상향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조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하향식에 대해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을 갖고 있기도 하죠. 아, 위에서 추진을 도와주면 얼마나 쉬울까. 그렇기만 하면 난 정말 잘할 자신이 있는데...

저는 여기에서 하향식을 믿는 사람들이 환상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상향식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도록 하고요). 하향식에도 리스크가 있습니다.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많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하향식 변화가 효과적이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경험이 적어서 순진하거나, 혹은 표면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아니면, 제가 이해하는 하향식 변화가 뭔가 다른 것일지도 모르고요.

일반적으로 하향식 변화를 하면 성공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책임과 권한이 높은 사람이 추진하기 때문에 비용투자도 크고 성공시켜야 할 조직적 압력이 큽니다. 탑에 있는 사람은 뭔가 자신의 입지와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하며, 아예 그런 목적으로 변화 도입을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 변화 도입이 성공적이었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어쨌건 변화 도입은 성공적인 것으로 포장됩니다. 또 윗사람은 실제로 어떤 구체적 변화가 일어났는지 관심이 없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도입 성공인지 판단을 못하고 보고서의 숫자 몇개로 얼렁뚱땅 넘어가기 쉽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질문을 해보면 압니다. "변화 도입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그것을 무엇을 보거나 들어서 판단하셨나요?" 하향식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프로젝트들은 항상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그럼 하향식 변화가 실제로 실패하는 경우에는 어떤 원인들이 있을까요?

이 외에도 가장 큰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많은 경우, 회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화 도입을 하는데, 사실상 그 문제의 근본 원인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창의적인 조직을 만들고 싶어하는 CEO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그 조직이 창의적이지 못한 가장 근본 원인에는 CEO 자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제 해결책에 자신을 바꾸는 내용은 배제되어 있죠(관련해서는 빠르게 학습하는 팀은 뭐가 다를까 참고). 시스템적 사고를 훈련하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서 동시에 혹시 내가 문제 상황에 기여한 것은 없었는지 자문해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실제 스토리를 말씀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 컨설팅/코칭 커리어의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모 기업의 임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애자일을 도입하고 싶다고.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그 정도로 높은 위치의 사람에게서 컨택을 직접 받은 적은 무척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죠. '이번 일은 추진하기가 쉽겠구나.'

그런데 계약 전에 조사를 하면서 하나 둘 예상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무자들을 만나 보니 얼굴이 죽을 상입니다. ERP, BPR, 식스 시그마, 린, TSP/PSP, CMMI 등을 이미 도입했거나, 연속적으로 도입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애자일이라는 것도 또 새로 도입하라고 위에서 주문이 들어오니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다 이거죠.

결국은 그 계약 건을 맡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에게 상향식이냐, 하향식이냐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내 경험으로 보면 둘 다 너무 변화 도입을 단순화해 생각하는 모델이고, 더 나은 방법이 있다. 그렇지만 꼭 쉽지는 않다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혹시 이 글과 관련된 경험들이 있으시면 댓글이나 트랙백 주시면 좋겠네요.

--김창준

p.s. 상향식이냐, 하향식이냐, 아니면 다른 무언가냐 하는 이슈는 변화도입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로 AC2에서 심도 깊게 다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