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제목은 창의적 창의성이고 부제는 창의성을 자유롭게 하기입니다.
우선 발표시 사용했던 프레젠테이션 파일과 발표 개요(발표 시작 전에 청중들에게 인쇄해서 나눠줍니다)를 공개합니다. 양해를 구할 것은 국제 행사였기 때문에 발표 파일이 모두 영문입니다(하지만 발표 개요는 한글입니다). 제가 설명을 하면서 보여주면 훨씬 더 재미있고 의미가 좀 더 잘 전달되리라 생각합니다만 일단은 아쉬운 대로 자료만 올립니다.
발표 자료는 우하단의 이젤 모양 아이콘(페이지 숫자 오른쪽)을 클릭하면 전체 화면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창의적 창의성 : 창의성을 자유롭게 하기
창의성은 영어로 "creativity"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희랍어 creare에서 왔고, 이는 다시 인도유럽어의 어근 ker에서 왔습니다. 이 어근을 어원으로 공유하는 다른 단어는 곡물을 뜻하는 cereal(우리가 아침에 먹는 씨리얼이 같은 단어입니다)이 있습니다.
ker에는 자라다(to grow)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라다라는 말은 일견 느끼기에 창의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창의성은 일반적으로 무에서 유를 가져오는 것이지 이미 존재하던 것을 키우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창의성에 대한 대표적인, 그리고 잘못된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라다"라는 뜻이 창의성을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발 더 나아가서, 창의성에 대한 많은 고정관념들이 있으며, 그것들을 넘어서서 창의적인 창의성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창의성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중은 창의성의 소비자입니다.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말을 진부할 정도로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창의적이라고 느끼지 못하며, 창의적 경험들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창의적인 상품을 구입합니다. 창의적으로 디자인된 소파에 앉아서 창의적으로 만들어진 TV에서 창의적으로 제작된 광고를 보며 창의적인 제품을 구입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창의성을 대리 만족합니다.
우리의 이런 현실은 창의성에 대한 고리타분한 고정관념들 때문입니다. 창의성은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고정관념의 벽을 쌓아왔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창의성이 직관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이성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또 새로운 것과 관계가 깊다고 보고 옛 것과는 정반대라고 봅니다. 혼자서(그리고 고독하게) 작업하는 모습이 여럿이서 작업하는 모습보다 더 대표적인 창의성의 이미지입니다. 예술과는 거리가 가깝다고 보지만, 수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창의성이 개입할 여지가 있으나 이미 있는 것을 분석하는 것은 창의성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어쩌다가 한 번 창의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지, 매일 일상적으로는 경험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크게 보면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적용분야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지적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창의성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나 그 울타리가 매우 좁습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창의성을 창의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되고 있습니다. 예술에 적용되는 창의성이, 수학에 적용되지 못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겠습니까? 창의성은 수학에 필수적이며, 또 반대로 수학은 창의성에 필수적입니다. 다만, 여기에서 수학이라는 것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지만 여기에서는 수학적 사고라고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창의성은 특정 인지적 과정하고만 관련이 있다고 여깁니다. 창의성은 도약(새로운 것을 생각해 냄)과 관련이 있지 안착(적합한 것을 골라내고 현실화 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창의성에는 도약과 안착 모두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창의성에는 적합성과 제약이라는 맥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의 구조와 제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우리는 새로워 보인다고 해도 창의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약과 안착을 분리된 단계로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 활동은 그렇게 계단식으로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도약과 안착은 혼재되어 있습니다. 모두 창의성이라는 한 몸의 부분인 겁니다. 또한, 창의성은 반복이나 지루함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반복에서 흥미로운 패턴이 나오고 패턴에서 창의성과 새로움이 출현합니다. 지루함에서 새로움에의 욕구가 생기고 아이디어가 샘솟게 됩니다. 반복과 지루함은 창의성의 生地입니다.
창의성은 이러한 고정관념들의 족쇄에 묶여 있고, 동시에 우리는 창의성을 대상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정관념과 대상화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그 능력을 저는 창의적 창의성, 혹은 이차적 창의성(Second-Order Creativity)이라고 합니다.
창의성을 위해서는 과거와 단절을 해야 한다, 과거는 오히려 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자기 부정이 생깁니다. 과거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면 어떨까요? 창의성은 키우고 기르는 것입니다. 창의성은 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The fatal metaphor of progress, which means leaving things behind us, has utterly obscured the real idea of growth, which means leaving things inside us. --G. K. Chesterton
우리 뒤에 뭔가 남겨두고 간다는 뜻의 진보는 치명적인 비유로, 우리 안에 뭔가 남겨둔다는 성장의 실질적 개념을 철저히 덮어버렸다.
우리들은 창의적입니다. 하루하루 살고있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하루하루 새로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위와는 다른, 생명체의 특징입니다. 사는 것은 창조하는 것입니다(To live is to create).
湯之盤銘 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大學>
On the bathing tub of T'ang, the following words were engraved: "If you can one day renovate yourself, do so from day to day. Yea, let there be daily renovation."
우리는 창의성을 밤하늘에서 우리 일상속으로 끌어내려야 합니다. 우리 삶은, 나는 이미 창의적이란 것을 깨닫고, 내 삶 속에서 창의성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을 더 새롭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합니다.
창의성을 해방하고 대중에게 돌려주는 길은, 우리의 하루하루를 느끼고, 구석구석을 새롭게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해볼까 하는 생각, 그리고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노력에서 출발합니다.
대학교 첫 엠티에서 술병을 따려던 선배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따면 잘 땄다고 소문이 날까?"
Socrates: Slow down. You might taste something.
소크라테스: 천천히 먹어라. 뭔가 맛을 느낄 거다.
Dan: You sure got a lot of rules about stuff, don't you?
댄: 정말 갖가지 규칙이 있으시군요?
Socrates: Not rules. Things I've learned from my own life experience. That's why I'd say your eating is sloppy.
소크라테스: 규칙이 아니지. 내 삶의 경험에서 내가 배운 것들이다. 그래서 네가 먹는 것이 서투르다고 하는 거야.
Dan: Who cares?
댄: 무슨 상관이에요.
Socrates: You do. That's the difference between us, Dan. You practice gymnastics. I practice everything.
소크라테스: 니가 상관이 있지. 바로 그게 너와 나의 차이점이다. 너는 기계체조를 수련한다. 나는 모든 것을 수련한다.
<The Way of Peaceful Warrior>
평화로운 전사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