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로-크레딧/파이낸스에 대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 (이미지 출처는 위키피디어)
저는 이 마이크로크레딧이라는 말에서 착안하여 마이크로 프로젝트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개발자를 고용할 처지가 못되는 프로젝트에 짧은 시간 동안 참여하되 그 사람이 최소한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지렛대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작년 7월이었습니다. 브라스밴드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된 펭도님이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펭도님은 대학생이었고 자본금이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최대한 돈을 아껴서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만, 문제는 개발자였습니다. 개발할 수 있는 인력이 주변에 없고, 또 인력비가 만만찮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죠.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저를 포함 총 세 명의 개발자가 8시간 동안 개발을 해주는데, 목표는 그만큼의 개발을 통해 펭도님이 돈 버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10시간을 계약했습니다. 2시간은 온, 오프라인 회의에 사용하고, 나머지 8시간을 4시간씩 나눠서 총 이틀에 걸쳐서 개발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혹자는 하루 종일 일하는데 개발은 네 시간만 하는 거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출근하고 딱 네 시간만 일하고 퇴근합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개발 첫날은 프로젝트 킥오프 회식하고, 둘째날은 프로젝트 마감 회식했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이 부분은 약간 복잡합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불할 능력이 될 때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저희가 받아야 할 금액의 최저선과 목표선을 정했습니다. 최저선의 금액은 "보장금액"이라고 불렀고, 목표선의 금액은 "최대금액"이라고 했습니다. 보장금액은 우리가 이번 프로젝트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저 금액이고, 최대금액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희망하는 적정금액입니다. 어떻게 되건, 사업이 론칭되고 2개월 이내에는 무조건 보장금액을 지급하는 것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이라도 매출액이 일정선을 넘으면 바로 보장금액을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매달 말일 기준으로 매출액이 또 일정선을 넘으면 최대금액을 지불하도록 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 계약은 철저히 상호간의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계약이 가능했습니다. 물론, 저희 입장에서도 짧은 시간만 투자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적었습니다(사실, 사업을 해보려는 패기있는 젊은 대학생들을 위해 자원봉사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도 있었죠). 또 펭도님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했을 겁니다.
저희는 정말 8시간만에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사이트 말입니다(물론 부족한 점도 많았습니다). 8시간 내내 이 짧은 시간으로 무엇을 해야 최대 효과를 낼 수 있을까를 우리 자신에게 항상 물었습니다. 펭도님이 개발은 못하시지만 개발작업에 함께 참여하시면서 즉석 의사결정을 내리고 필요한 때에 즉각적인 방향 전환을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펭도님은 단돈 5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사업인지 궁금하시죠? 자신만의 독특한 명함(?)을 만들어줍니다. 유니크카드라고 합니다. 명함을 받을 사람의 이름이 미리 인쇄되어 있는 명함을 찍을 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여러 조각으로 만들어 뒷면에 좋아하는 격언을 담을 수도 있습니다. 용도가 참 다양합니다. 유명 블로거들은 여러 경로로 이미 접해보신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사무실 이전도 하시고, 발렌타인 데이 기념 특별행사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작업 자체가 매우 도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그 결과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작년에 보장금액을 지급 받았을 때 자랑스럽고 뿌듯하더군요). 또, 제가 도와준 사람이 힘을 얻고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이런 마이크로 프로젝트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 사회에 더 많은 새로움과 가능성들을 키워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열정은 있지만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경험이 많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멘토링 관계를 맺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큰 것"과, "위에서부터"에 대한 강박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은 밑에서 일어나는 작은 규모의 꾸준한 실험과 시도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