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중>

사람들은 종종 "설계"의 중요성을 설파할 때 건축이라는 분야를 들먹거립니다. 건축이란 맥락의 여러 개념들을 고스란히 가져와서 타 분야에 그대로 오버랩시킵니다. "우리도 건축처럼 일단 완벽한 설계도를 만들고 나서..."
 
하지만 저는 이러한 "건축의 비유"가 쓸모없는 경우가 많으며, 이 비유에 기반한 주장들은 대부분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의 비유에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우선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째, 소프트웨어는 건물과 너무도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그 비유가 유용하다기보다 가상의 제약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두 째, 실질적 건축보다도 훨씬 더 과장되고 왜곡된 건축의 이미지를 갖고 비유한다는 점입니다.

우선은 두 번 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봅시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건축가의 입을 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한국 현대 건축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건축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 김수근 선생의 글입니다.

큰 건물뿐 아니라 조그만 주택 하나 짓는 경우라도 설계할 시점과 착공할 때, 준공할 무렵에는 그 내용과 양상이 매우 달라지는 것은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것이다.

설계대로 지은 집은 별로 좋은 집이 될 가능성이 없다. 좋은 집을 지으려면 많은 설계변경이 이루어진 것이어야 한다.

설계대로 지은 집이란 설계시점보다 조금도 발전시키지 않고서 지었다는 것을 말한다. 공사과정을 보면 계획이나 설계하는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다. 현대의 급속한 기술발전과 여러 가지 새로운 재료의 발달은 눈이 부실 정도로 그 속도가 빨라서 설계시점에서 가능한 기술과 재료가 완공 무렵에는 구형의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신정보를 항상 입수하면서 설계 그 자체를 발전시켜야 한다.

건축설계하는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한 설계를 해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설계도는 완전한 것이 없다. 설계도면에 있어서 완전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도면에 표현된 내용은 어디까지나 발전의 여지와 보완의 기대를 내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변경이 요구된다. 공사 도중에 설계변경이 많으면 많을수록 집은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개인주택이나 빌딩인 경우에는 그 설계변경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관의 건물인 경우에는 쉽지 않다. 설계변경이란 관에서는 터부이다. 감사를 할 때도 설계변경은 집중의혹의 목표가 된다. 물론 이것은 공사금액과 관련되기 때문에 부정의 여지를 가졌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설계대로 짓고 있다고 하는 관의 건물이라 해도 실제론 설계대로 되어 가는 집은 전무하다.

같은 비용 갖고 더 좋은 집을 짓도록 설계변경하는 길을 막고 있다. 그러므로 관의 건물이 좋은 건축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짓는 관의 건축비는 일률적으로 규제되어 있다. 관의 건물일지라도 여러 종류의 다른 기능과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 후손에 물려줄 좋은 유산을 만들려면 설계변경, 즉 설계발전을 설계 시작에서부터 완공 때까지 허용하고 오히려 장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믿는다.

--김수근, 知的 설계변경, 동아일보, 1984년 3월 19일 (강조는 김창준)


저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계획과 설계는 다음의 경우 바뀌어야 한다:

설계가 완성되는 시점은 그 구현체가 완성되는 시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