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여러분이 보실 동영상은 앨런 케이(Alan Kay)가 80년대 말에 했던 강연 Doing with Images Makes Symbols(아주 심오한 제목이고, 강연 전체가 매우 감동적인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 포스트에...)에서 앨런이 교육철학과 UI, 사람의 학습 방식 등에 대해 설명하다가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는데, 거기에 나오는 영상입니다.
대략 한시간 삼십분 짜리 영상이고, 거기에서 56분 지점에서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약 8분 가량 지속됩니다. 위 동영상을 재생하시면 해당 부분부터 시작합니다. 일단 심호흡부터 하시고요. 무척 충격적입니다.
나은 화질을 원하시면 이곳에서 다운 받으세요. (여기에는 고화질의 스트리밍도 있습니다)
팀 갈웨이(Tim Galleway)라는 하버드 출신 테니스 코치가 독특하게 테니스를 가르친다는데, ABC 방송국에서 사기인지 아닌지 보려고 사람들을 급파합니다. 테니스를 평생 안쳐본 사람들을 수 명 뽑은 다음, 그 중 가장 몸치에 가까운 사람을 뽑았습니다. 주인공은 몰리라는 아줌마입니다. 눈으로 딱 보기에도 운동하고는 거리가 있습니다. 테니스라는 운동은 손도 안대봤을 뿐만 아니라, 30년 동안인가 운동을 한번도 안해봤다고 합니다.
자 여러분은 이 아주머니가 어떻게 20분만에 즐겁게 테니스를 치는지 보게 됩니다.

00분 00초에 레슨이 시작됩니다.


7.5분이 지나면 이제 포 핸드는 끝나고 백 핸드로 넘어갑니다.

그러고는 잠시 후 서브를 배웁니다.

마지막으로 팀과 매치를 합니다. 심지어는 점수를 따내기까지 합니다.

즐겁게 테니스 게임을 즐기면서 아주머니가 외칩니다. "Fantastic!" 팀이 말합니다. "This is called Tennis!" 이게 바로 테니스라는 겁니다! 몰리 말로는 자기가 마치 테니스를 미리 칠 줄 알았던 것처럼 그 동작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가르쳤길래 이렇게 빨리 배웠을까요?
우선 처음에는 팀이 공을 쳐서 넘기는 시범을 바로 옆에서 몇 번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저쪽에서 공이 넘어와 땅에 튈 때 "튀고"(bounce)라고 외치고, 그 공을 치는 순간에 "치고"(hit)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공을 억지로 치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관찰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몰리가 처음에는 공의 움직임만 보면서 바운스와 힛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다가는 라켓을 휘두릅니다. 어떻게든 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나 보죠. 처음에는 헛스윙하더니 이내 공을 잘 쳐냅니다.
통상적인 교습법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앨런 케이는 말합니다. 우리는 학습 이론에 대해 충분히 모른다. 그럴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학습에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테니스를 가르칠 때 처음부터 얘는 라켓이고 이렇게 잡고 포즈는 이렇게 취하고 어깨는 어떻게 하고 공은 가장 높이 떠올랐을 때 치고 어쩌고 이런 "설명"을 하면 학습자의 머리 속에는 이런 저런 "자기 명령"들이 떠다니게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공을 보지 못합니다. 팀이 주문한 것은 간단합니다. 바운스와 힛을 외치게 하는 것인데, 이걸 하면 자동으로 공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고로 공을 쳐내는 자기 몸에 이미 있던 잠재된 능력을 쓸 수 있다 이거지요.
백핸드를 가르칠 때에는 소리에 집중하게 합니다. 팀이 반대편 코트에서 공을 넘겨주고 몰리가 그걸 칠 때 라켓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주의깊게 듣도록 합니다. 제대로 안맞으면 소리가 경쾌하지 않습니다. 그 소리를 집중해 듣다 보면 이상하게도 백핸드가 아주 잘 나오는 겁니다.
서브를 가르칠 때에는 리듬과 이미지 훈련을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시길)
앨런 케이는 말합니다. 대부분의 테니스 수업에서는 처음부터 공을 쫓아다니는 데에 시간을 보내는데, 몰리는 거의 90%가 넘는 확률로 공을 쳐서 넘기는 걸 했다. 테니스의 핵심이 뭐냐? 공을 쳐서 넘기는 거 아니냐. (참고로 앨런과 팀은 서로 친구이며, 팀의 책에서는 앨런 이야기가 나오고 앨런 강연에서는 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실은 공을 쳐서 넘겨야 한다는 부담을 전혀 주지 않으며, 억지로 치려고 하지 말라고까지 합니다. 그리고 실수를 하면, 괜찮다 걱정마라 그냥 계속하라 이런 식으로 격려를 합니다.
이 방식은 초보자한테나 도움이 될 것 같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프로 선수들이 팀에게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교습 방식을 다룬 책이 있습니다. Inner Game of Tennis라고 합니다. 얄팍한데 꽤나 감동적인 책입니다.

이 책이 워낙 대성공을 해서(스포츠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Inner Game of Golf라는 책도 나오고, Inner Game of Music, 심지어는 Inner Game of Work(이 책은 최근 번역되어 출간 됐음)까지 나왔습니다. 저는 Inner Game of Programming을 써볼 생각입니다. :)
참고로 이 Inner Game 이론은 정말 여러 분야에 적용가능하며, 저 역시 프로그래밍에 적용해서 어떤 잠재력을 봤습니다. 20분만에 테니스를 배워서 즐겁게 치는 것이 가능하다면, 저는 그 정도 비율로 압축적인 시간에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즐겁게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꼭 오랜 기간 고생하면서 배우는 것이 최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또 재미있게 공부하기가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Inner Game of Work에 소개된 팀의 코칭 일화를 옮기는 것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휴스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이너게임을 설명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이너게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마치자 단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그것을 응용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튜바 연주자가 자진해서 실험대상이 되었습니다. 나는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고 튜바 독주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무대에 오른 연주자에게 그가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고음 영역에서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가장 어렵습니다." 나는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한번 튜바를 불어보라고 했습니다. 나에게는 아주 훌륭하게 들렸습니다만 그는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의 지식에 의존하면 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어떤 전문지식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나는 그에게 "무엇이 마음에 안 들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분명하지 못해요"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다시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사실 튜바의 관 끝은 내 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혀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구별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내가 코칭에 이용할 수 있는 핵심변수에 근접하고 있었습니다.
"혀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예, 지금처럼 고음 영역이 있는 어려운 악절을 연주할 때면 혀가 마르고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는 듯합니다."
이제 나는 필요한 것을 모두 얻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같은 악절을 연주해보세요. 단, 이번은 아티큘레이션을 분명하게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단지 그 악절을 연주할 때 혀의 상태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에 주목해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시 같은 악절을 불었습니다. 내 귀에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모두 아름다운 연주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튜바 연주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도 놀라고 있는 듯 했습니다.
...
[배우며 즐겁게 일하는 법 이너게임, 티머시 골웨이 지음, p.313 ff.]
앨런이 강연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몰리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요?" 아마추어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테니스 선수가 되었다고 하고, 여기에서 받은 영감으로 Inner Game 이론을 이용한 다이어트 코스를 만들어서 성공했고(실제로 살도 빠졌고), 결과적으로 그 때 테니스 교육을 계기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 방식을 프로그래밍에 적용하는 것, 교육과 학습에서의 의미 등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을 기대하세요.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