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1949년 출간된 The American Soldier라는 책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들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정리한 4권짜리 책입니다. 이 책에 나온 발견 몇가지를 나열하면(괄호 속은 출처):
- 고학력 군인들은 그렇지 못한 군인들에 비해 더 많은 정신신경증적 증상을 보였다. (2권, 439p)
- 시골 출신 군인들은 도시 출신 군인들에 비해 복역기간 중 통상 더 긍정적이었다. (1권, 94p)
- 남부 출신 군인들은 북부 군인들에 비해 남양제도의 더운 기후를 더 잘 견딜 수 있었다. (1권, 175p)
- 백인 사병들은 흑인들에 비해 장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1권, 583쪽)
- 남부 출신 흑인들은 북부 출신 백인 장교보다 남부 출신 백인 장교를 선호했다. (1권, 581p)
- 전쟁 종료 후에 비해, 전쟁 중 군인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2권, 561p)
읽어보면, 다 설득력이 있고 합당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아무래도 좀 더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들(영어로는 street-smart)이 정신적으로 더 적응을 잘할 것이고, 더운 지방 사람들이 더운 날씨에 적응을 더 잘할테고, 흑인들은 더 높은 직위에 큰 열망이 없을테고 등등. 동시에 뭐하러 이렇게 상식적이고 뻔한 결과를 얻으려고 돈들여 연구하는지 하는 마음에 혀를 찰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반전은 여기에 있습니다. 위 6가지 모두 정반대가 사실이었다는 점입니다. 출처를 표기한 것은 해당 반대 사실이 나온 부분입니다. 저학력 군인들이 신경증을 더 보였고, 도시 출신 군인이 더 긍정적이었으며, 흑인 군인들이 장교가 되고 싶은 마음이 훨씬 강했고 등등. 관련 논문.
오슬로 대학의 칼 티건(Teigen)은 1986년도에 학생들을 데리고 속담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진짜 속담과 그 속담의 반대를 섞어서 보여주고 각각 얼마나 진실로 느껴지는지 물었습니다. 예를 들어, "두려움은 사랑보다 강하다"(실제 속담)와 "사랑은 두려움보다 강하다"(반대)라든가, 혹은 "넘어진 사람은 쓰러져있는 사람을 도울 수 없다"(실제)랑 "넘어진 사람은 쓰러져있는 사람을 도울 수 있다"(반대) 같은. 흥미롭게도 학생들은 두 가지 반대되는 속담 모두를 진실로 느꼈습니다.
얼마전에 이런 기사가 뉴스에 났습니다. 연구결과, 남편과 부인의 집안일 분담이 평등할 수록 이혼률이 높다는 것. 사람들은 이걸 보고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래, 이렇게 평등한 생각을 갖고 진보적이고 젊은 커플들은 이혼도 좀 더 쉽게 생각할거야. 말되지. 당연하지. 하지만, 몇 달 전 남편과 부인의 집안일 분담이 평등할수록 결혼생활이 안정적이고 만족스럽다는 연구에 대한 뉴스를 보고는 당시에 또 말되네 라고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후판단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합니다.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답이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럴싸해 보이는 썰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일치하는 예를 자신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싸하다 느껴지는 말을 볼 때 우리가 해야할 것은 만약 이 주장이 반대였더라면 내 머리 속에서 어떤 반응이 돌아갔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