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사무실과 가구 집기에 신경을 쓰는 회사를 많이 봅니다. 인터넷에 보면 아름다운 사무실, 혁신적인 사무실의 사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환경을 보며 입을 쩍 벌리고 부러워 하지요. 그런 곳에서 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상상도 하고요.
하지만 제 15년간의 컨설팅 경험에서는 오이가 피클화 되는 확률이 높지, 소금물이 오이화 되는 확률은 높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오이는 공간과 가구이고 소금물은 문화를 말합니다. 이 비유는 컨설턴트 제럴드 와인버그가 언급한 프레스콧의 피클 법칙(Prescott's Pickle Principle)을 빌어 쓴 것입니다(Cucumbers get more pickled than brine gets cucumbered.)
수 년 전에 방문했던 모 회사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협업 공간으로 유명한 사무실로 몇 개의 (국내외) 건축/디자인상도 받았다고 합니다. 공간 구획, 계단, 기둥, 탁자, 의자 등에 모두 협업적인 부분을 신경을 썼습니다. 유명한 프랑스 건축가인가 디자이너인가 하는 사람이 만들어주고 갔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공간을 보다가 저는 조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협업을 진작하기 위해, 파티션 없이 공유된 테이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데스크탑 컴퓨터를 디자이너의 의도와는 달리 자신의 데스크 "위"에 칸막이용으로 올려두고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공간이 그들을 바꾼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공간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 공간은 파티션이 있는 전통적 공간과 쓰임새에서 전혀 차이가 없었습니다. 수십억을 들인 공간이 무색했습니다.
또 다른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모 팀에서는 사무 공간에 대한 개선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죠. 그 팀에서 했던 시도는 사람들의 사무공간 사용 동선을 분석해서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웹캠을 사무실과 회의실 등에 설치를 했었나 봅니다. 그 팀이 며칠 후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파괴된 웹캠이었습니다. 직원들 중 누군가가 기분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공간 개선팀의 바람대로 자신들의 평상시 패턴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분노를 표현했습니다. 웹캠 같은 장치가 감시하는 듯한 모습으로 불쾌하게 느껴졌던 것이죠. 상호 신뢰가 없었던 것이고, 누적된 불신이 폭발한 것이겠죠. 그래서 사무공간의 사용 패턴을 분석하려던 프로젝트는 싱겁게 빨리 끝나버렸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직원들의 사무실 사용 패턴보다 그 조직의 문화를 더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공간이 우리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 소위 "어포던스"를 위한 노력이 무용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하지만 그 접근은 문화를 인정하고 그걸 변화시키려는 더 큰 그림과 함께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그렇듯이, 오이는 피클이 될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좋은 사무 공간을 가진 회사를 그리 부러워할 필요도 없지 싶습니다. 오이는 피클이 될테니까요.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