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지인인 박준표님이 Essential Scrum이란 책을 번역하셨는데 제가 추천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직 출간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추천사에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메세지들이 몇 가지 있어서 그 원문을 공개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에센셜 스크럼이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되었다.

첫 번째로 이 책은 에센셜하지 않다. 500쪽에 육박하는 책을 에센셜이라고 하기가 뭐하다. 에센셜이라고 하면 보통 꼭 필요한 핵심적 부분을 일컫는데, 책의 외형으로 보나 내면으로 보나 에센셜이라기보다는 포괄적인 책의 느낌이다.

저자 케네스 루빈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듣고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책 여러권을 항상 추천해줬는데 그럴 필요 없게 모든 걸 담은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 스크럼에서 에센셜한 문서라면 스크럼 가이드(scrum.org가 만든 것)나 스크럼 프라이머(스크럼 연합Scrum Alliance이 만든 것) 정도를 예로 들 수 있다(참고로 두 조직은 정치적으로 방향을 달리 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내용을 다룬다면 에센셜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것은 과하다 싶다(역으로 생각해, 저자가 이 책에 나오는 내용 전부 다를 "꼭 필요한 핵심"으로 봤을 수도 있긴 하다).

반대로 이렇게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었기 때문에 장점이 분명히 있다. 통상적인 스크럼 책 한 권에서 다루지 않는 다양한 내용을 한 권으로 다 배울 수 있다. 특히 9장, 12장, 15장, 16장, 17장, 18장 같은 경우 스크럼 입문 책에서 다루지 않는 제품 관리자의 구체적 역할이나 제품 로드맵, 포트폴리오 등 좀 더 넓은 범위의 지식을 쌓을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관련 서적을 대략 대여섯 권은 봐야 얻을 수 있는 지식이 모여 있다. 정말 책 딱 한 권으로 최근 스크럼의 발전과(물론 이 책이 출간된 2012년 이후의 발전은 담고 있지 못하다) 고급 기법까지 접하고 싶다면 이 책만한 책이 없다. 케네스 루빈은 자신이 이 책을 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듯 보인다.

두 번째로 잘못된 점은 스크럼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점이다. 저자가 스크럼 연합의 첫번째 상임이사(managing director)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스크럼이란 단어를 쓴 것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책 내용은 스크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5장 사용자 스토리나 8장 기술적 채무 등은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애자일 방법론에서 별 구분없이 사용하는 개념들이다. 사실 이 책에 있는 70% 이상의 내용이 스크럼과 상관 없이 개발된 것이 많고, 따라서 애자일 전반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법과 지식들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독자들은 여기에 나온 지식과 기법을 스크럼이 아닌 곳에 사용하면서 죄의식을 느끼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기실 내가 본 대부분의 성숙된 스크럼 조직들은 스크럼과 기타 애자일 방법들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좀 더 관심이 생기는 기법이나 개념이 있다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직접 탐구를 해 볼 것을 권한다.

그래도 스크럼이라는 제목을 사용해서 장점도 있다. 일단 근래 애자일 방법론 중 가장 인기있고 지명도가 있는 스크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좀 더 접근이 쉽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스크럼이 그렇듯이 이 책에는 기술적인 언급은 거의 전무하다. 예컨대 자동화된 테스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내용은 애자일을 하는 조직이라면 중요한 주제일 수 있지만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이 점 역시 저자의 집필 의도였다고 한다). 주변에서 비개발자가 애자일 관련 추천서적을 요청한다면 이 책을 권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제목과 그다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분명 장점이 많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를 위해 주의사항 하나를 언급하고 추천사를 마칠까 한다. 저자가 서두에서 크네빈 프레임워크를 언급하며 스크럼은 복합 영역에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합 영역은 소위 베스트 프랙티스가 가장 위험한 접근법이 될 수 있는 영역이다. 매번 새로운 문제상황이 펼쳐지고 분석과 예측이 불가하기 때문에 베스트 프랙티스라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진행하는 도중에 접근법을 찾아내는 것(emergent practice)이 필요한 영역이다. 이 면에서 보자면,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을 베스트 프랙티스로, 마땅히 해야할 것들, 규칙과 규범으로 받아들인다면 굉장히 위험해진다고 할 수 있다. 크네빈 프레임워크(Cynefin Framework)에서는 복합 영역에서 조사하고, 감지하고,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조사(probe)는 가느다란 탐침으로 찔러서 내부를 조사하는 걸 말한다. 쉽게 말하면 실험이다. 실험하고 무슨 일이 생겼나(어떤 부분이 성공이고 실패인지) 잘 살펴보고 그에 맞게 반응하는 것(성공이라면 그걸 확대하고 실패라면 그 피해를 축소하고), 이것이 스크럼의 에센셜이 아닐까 싶다.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실험하고 살피고 반응하실 수 있기를 빈다.

--김창준


이 추천사를 준비하다가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경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아마존의 어떤 리뷰를 읽게 되었습니다. 골자는, 스크럼은 간단한 것이고 이 정도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인터넷의 더 나은 무료 기사를 읽는 것이 낫다는 의견입니다. 좋은 리뷰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여기에 저자의 동료로 보이는 앨런(Alan)이라는 사람이 단 커멘트를 보시죠.

나는 애자일과 스크럼에 대한 책이 40권이 넘고, 10년 넘게 스크럼을 가르쳐왔는데, 나는 이 책을 강추한다. 당신이 이 책에서 별로 얻지 못했다는 점은 당신이 스크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된다


도대체 애자일 책을 40권이나 소유하고(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10년씩이나 스크럼을 가르치고 행해온 사람이 부정적 리뷰에 저렇게 반응하다니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앨런의 저 반응을 보고 원래 리뷰를 단 사람은 아마도, '아 내가 부족하니 앨런의 조언을 잘 들어야지'하는 생각이 들기보다, 앨런에게(그리고 나아가서는 스크럼 자체에) 정나미가 떨어질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변화에 실패하는 팀장이겠죠. 이 책에서 말하지 않고 있으나 정말 중요한 부분을 하나 추가해야겠다 싶습니다. "스크럼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 인터랙션 하는가."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