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 연구에서 기념비적인(그러나 불행히도 크게 조명받지 못한) 연구(D.F. Ricks, 1974)가 하나 있습니다. 아이였을 때 뉴욕주에서 심리치료를 받은 어른들을 조사했을 때 정상적인 생활을 잘 하고 있는 건강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가르는 중요 요인이었을까요. 어떤 방법/기법으로 심리치료를 받았느냐, 어디에서 받았느냐 등은 관련이 없었습니다.

심리치료를 한 사람이 누구였느냐가 중요했죠. 특정 심리치료사에게서 치료를 받았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치료사를 일컫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슈퍼슈링크(supershrink -- 뛰어남을 뜻하는 super와 정신과의사를 일컫는 shrink의 조어).

상담학계에서 공통 요인(Common Factors) 학파로 불리우는 이멜과 웜폴드는 맥케이와 함께(McKay, Imel, Wampold, 2006) 소위 "치료자 효과"라고 불리우는 요인을 좀 더 연구했습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치료에 있어 상위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정신과의사가 설탕약을 준 경우(플라시보 조건)가, 하위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의사가 항우울제(이미프라민)를 준 경우보다 더 높은 치료 효과가 있었습니다. 설탕물을 받아 먹더라도 뛰어난 의사한테 가는 경우에 치료 효과가 더 높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온 겁니다.

이런 치료자 효과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이후 많이 진행되었는데, 결과들을 보면 상담에서 어떤 기법(예컨대 인지행동치료, 로저리안, 게슈탈트 등)을 쓰느냐보다 치료자가 누구인가가 상담효과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거듭 밝혀졌습니다. 어떤 기법을 사용하느냐는 것은 통상 상담 결과의 분산에서 5% 이하만을 설명한다고 봅니다(최대한 높게 봤을 때). 반면 상담자간의 차이에서는 뛰어난 상담자는 평균적인 상담자보다 10배 빠른 치료효과를 보여줬습니다.

치료자 효과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심리 상담의 효과 연구에서는 주로 이런 "치료자 효과"를 제거하고 기법, 방법론의 효과를 연구하려고 해왔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매뉴얼을 제공하고 그걸 따라하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MI라고 하는 비교적 근거가 많은 상담 기법의 메타분석(70여개의 임상시험 대상) 연구에 따르면 매뉴얼이 제공된 경우 치료의 효과 크기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절반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Hettema, Steele, Miller, 2005). 저자들은 자신의 다른 연구에 근거해, 상담사가 매뉴얼을 정확히 따르면서 명시된 단계를 끝내려다가 내담자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단계를 마무리한 부작용이 생겼다고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매뉴얼이 말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상담사들이 할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마이클 폴라니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라고 암묵지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죠. 사실 더 나아가서 모든 지식이 근본적으로는 암묵지라고 역설했습니다. 어떤 기법이나 방법론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극히 부분적이며 오로지 그것으로만 지도를 삼기에는 위험이 클 수 있는 거죠. (제가 저번에 쓴 실수는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만약 ~하면 ~하라"라는 널리 인정되는 규칙이 있는가, 그런 규칙들을 잘 따른다면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세요. 만약 그런 규칙이 커버하는 부분이 넓다면 해당 분야는 "단순한 도메인"에 해당합니다. 소위 베스트 프랙티스가 먹히는 분야이고, 결과 예측이 가능한 분야이죠. 하지만 반대로 맥락을 가로지르는 보편적 규칙들이 별로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결과 예측하기가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다면 해당 분야는 "복잡한 도메인"(cynefin framework에 따르면 complex domain)이 됩니다. 통상 사람 요소가 차지하는 비율이 많을수록 복잡한 도메인에 속합니다. 상담이 그렇죠. 이런 복잡한 분야일수록 어떤 특정 기법의 효과보다도 치료자 효과가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슈퍼슈링크들을 찾고 그들을 연구하고 육성해야 합니다(여러분들 주변의 슈퍼슈링크들은 누구이고 평소 행동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러면서 이런 연구를 토대로 우리가 사용하는 기법과 방법론들을 더 발전시켜 나가야겠죠. 아마 그 모습은 여러 방법론들의 통합적인 모양새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상담과 소프트웨어 개발은 다른 부분이 같은 부분보다 더 많겠지만 두 분야 모두 예측이 어렵고 복잡한 도메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아마도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가 더 예측이 어렵고 더 복잡하다고 주장을 하실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여기에서도 이런 치료자 효과가 기법/방법론 효과보다 크거나 적어도 필적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요. (여담이긴 한데, 애자일 방법론 중 특히 스크럼에서 앞서 말한 암묵지가 필요 없는 듯이 이야기되는 경우 -- 즉 단순한 규칙들을 지키면 된다고 하는 경우 -- 를 보면 우려가 됩니다. 복잡한 영역인데 단순한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할까요?)

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 우리가 어떤 방법론을 쓰느냐는 문제보다도 누가 참여하는가가 훨씬 더 압도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애자일 방법론 도입을 원하는 팀장이라면 "나는 어떤 팀장인가"를 먼저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어떤 팀장인지가 전혀 바뀌지 않으면서 새 방법론만 도입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반대로, 항우울제보다도 강력한 설탕물을 쓸 수 있는 의사처럼, 별 볼일 없어보이는 방법론일지라도 그걸 처방하는 팀장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가 있을 겁니다.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