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lickr. jddunn 촬영)
요즘 대부분의 집에서 조명용으로 쓰고 있는 콤팩트 형광등(Compact Fluorescent Lamp, 이하 CFL 혹은 형광등으로 표기), 익숙하시죠?
집 서가에서 형광등을 갈다가 실수로 방바닥에 헌 형광등을 떨어뜨려 그만 퍽 소리와 함께 1/5 정도가 깨져버렸습니다. 집에는 2살 짜리 아이가 엄마랑 다른 방에서 놀고 있고 8세 아이는 화장실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번 실제 상황이라고 가정하고 자신이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영화를 그려본다는 느낌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치운다면 어떤 식으로, 무슨 도구로 치울 건지 등등.
충분히 구체화된 절차를 생각하신 후에 다음 내용을 봐주세요.
이제 다음 목록을 한 번 보시죠:
- 바로 청소를 시작한다.
- 깨어지지 않고 남은 큰 부분은 형광등 상자에 잘 담아서 책장 위에 치워둔다.
- 깨어진 큰 조각을 손으로 집어 비닐 봉지에 담은 다음 묶어서 부엌에 있는 쓰레기 통에 넣는다.
- 작은 조각은 빗자루로 쓸어 담아 쓰레기 통에 붓고, 젖은 걸레로 방바닥을 닦은 다음, 빗자루는 털고 걸레는 대충 헹궈서 원래 있던 자리에 둔다.
- 진공 청소기로 바닥을 한번 청소한다.
- 청소 후 5분 정도 환기를 하고 문을 닫는다.
형광등이 깨졌을 때 위험성은 우선 수은 증기의 방출이 큽니다. 물론 작은 유리조각에 의한 외과적 상처 위험도 있긴 합니다만, 여기에서는 수은의 위험성만 생각해 보도록 하죠.
수은의 치명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면 형광등 하나에 얼마만큼의 수은이 들어갈까요? 우선 제품마다 차이가 크고, 용량(와트수)에 따라 다르고, 제조국, 제조년도, 종류(친환경인지 아닌지 등) 등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소비자시민모임의 2010년도 조사(일부 친환경 전구, 수은 검출기준 초과)에 따르면, 같은 36W 형광등 간에 400배 이상의 수은량 차이가 있었습니다(KSM1811 방법으로 측정시). 실험 대상 중에는 자그마치 42.4mg의 수은이 검출된 형광등도 있었습니다 -- 현 유럽 기준(Directive 2011/65/EU Annex 3. 1(b): 3.5 mg for 36W CFL)의 10배를 초과하는 수치입니다(소비자시민모임 보고서에서 인용하는 EU 기준은 2002년도 것으로 그 이후 몇 번의 개정이 있었고, 국내에는 일반 형광등의 수은 기준이 없음).
이제는 위 행동목록이 왜 위험한지 하나씩 설명해 보죠.
바로 청소를 시작한다.
적어도 15분 정도 환기를 하고(그 전에 사람들은 대피를 시키고) 청소를 시작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습니다. 그래야 수은증기를 적게 마시면서 청소할 수 있습니다. 유아의 경우 키가 작아서 지면에 더 가까운데, 공기보다 무거운 수은의 성질상 바닥 가까이에 수은 농도가 높아서 수은 흡입이 더 많습니다. 거기에 체중(예컨대 성인 체중의 1/10이라면 기준치도 그만큼 낮춰서 고려해야 함)까지 고려한다면 성인보다 더 큰 위험이 있습니다.깨어지지 않고 남은 큰 부분은 형광등 상자에 잘 담아서 책장 위에 치워둔다.
환경공학과학(Environmental Engineering Science)지에 2011년도에 실린 논문(Environmental Release of Mercury from Broken Compact Fluorescent Lamps)에 따르면 깨진 형광등에서 최장 10주 동안 수은 증기가 나올 수 있고 이것의 잠재성 위험성이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기준은 해당 논문에서 조사한 최대 3.6mg 이하의 수은이 들어간 형광등에서 실험한 결과이므로, 위 소비자시민모임 보고서에서 나온 42.4mg의 수은이 검출된 형광등은 결과가 더 심각할 것으로 사료됩니다.깨어진 큰 조각을 손으로 집어 비닐 봉지에 담은 다음 묶어서 부엌에 있는 쓰레기 통에 넣는다.
수은 증기는 비닐 봉지에 담아도 밖으로 배출됩니다. 부엌의 쓰레기 통에 둔다고 해서 안전하지 않습니다. 집 밖에 폐기해야 합니다. 차선책은 유리병에 담아두는 겁니다.작은 조각은 빗자루로 쓸어 담아 쓰레기 통에 붓고, 젖은 걸레로 방바닥을 닦은 다음, 빗자루는 털고 걸레는 대충 헹궈서 원래 있던 자리에 둔다.
빗자루, 걸레 등이 수은에 오염될 수 있습니다. 한 번 청소하는 데에 썼다면 폐기처분 하는 것이 권장되는 절차입니다. 그리고 걸레로 닦아도 미세한 조각/가루 등을 모두 치우기 어렵습니다. 권장되는 방법은 황색테이프 등으로 바닥을 찍어서 청소하고 걸레로 닦은 다음, 청소에 사용한 도구(큰 조각은 카드보드 등으로 쓸어 담는 것을 권함)는 모두 폐기하는 겁니다.진공 청소기로 바닥을 한번 청소한다.
(특히 밀폐된 공간에서, 그리고 수은 제거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공 청소기는 공간 내의 수은 농도를 다시 급격히 높힐 수 있고 이는 수 시간 지속될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사용하더라도, 청소기의 먼지 봉투를 폐기해야 합니다. 카펫 위에서 형광등이 깨진 경우, 수 주가 지난 후에도 진공 청소기를 사용하면 방의 수은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하게 됩니다.청소 후 5분 정도 환기를 하고 문을 닫는다.
5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수 시간을 권장하고 있습니다.그러면 형광등이 깨진 경우 어떤 단계로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미 환경보호국(US EPA)의 잘 정리된 웹페이지(Cleaning Up a Broken CFL)가 있으니 그 자료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추가로, 메인주에서는 형광등이 깨질 경우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떤 조치가 효과적인지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자료(Maine Compact Fluorescent Lamp Breakage Study Report)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쪽 공부를 하게 되었을까요? 실제로 제가 겪은 상황이고, 우리나라 인터넷에 제대로 된 정보가 너무 없어서 였습니다. 궁금하시면 국내 포탈 등에서 한 번 관련 정보를 검색해 보세요. 실망스러우실 겁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건전지 전해액을 빨은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무척 힘들었지요(저는 당시 여러 루트를 시도하다가 결국 생물학 박사과정인 퍼키군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해결 ^^;;). 독극물 중독 관리 체계가 잘 되어 있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관련 정보를 얻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소아과 의사도 전문지식이 없어서 증상이 아주 심각하지 않으면 돌려보내거나 정말 성의 있는 의사 혹은 심각한 증세를 보인다면 해당 제품 연구실과 통화해서 성분을 확인하고 책을 뒤진다거나 하는 정도겠죠. 응급의료정보센터(1339)가 있긴 하지만 독극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이 상주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고, 사이트의 독극물정보 데이타베이스도 일반인이 사용하기는 불편하고요.
국내에도 일반인들을 위한 독극물 중독 관련 시스템이 빨리 갖춰지고 적절한 교육도 제공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