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에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했습니다(1만 시간 법칙에 대한 오해, <아웃라이어>의 오역 몇가지). 또 관련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쓰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의 조선일보 인터뷰를 봤는데 거기서 동의하기 힘든 이야기를 봤기 때문입니다. 네, 이 글 제목처럼, 글래드웰이 "한국식 교육이 완벽한 모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식 교육이 완벽한 모델"이라는 언사 자체는 인터뷰하는 사람이 글래드웰의 말을 극적으로 과장한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고요. (KIPP이라고 하는 교육 프로그램 자체의 취지나 몇 몇 방법론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글래드웰의 말을 지원군으로 사용해서 현재의 교육방식을 정당화할까봐 소름이 돋았습니다.
대략 1만 시간의 의도적 수련을 통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매우 희망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조건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기존 체계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고 정당화 하는 듯한 문구로 변질되어 버리면 상당히 폭력적이고 동시에 절망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에게는 인내심과 성실의 미덕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PISA 테스트의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평균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이 훌륭하다고 이야기하는 근거를 여기에서 찾기도 합니다. 글래드웰 역시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우리나라가 PISA 테스트를 치는 국가들 중에서 학생들의 학교 내외 공부시간이 가장 길다는 것이랑 연결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되, 단순히 공부시간이 엄청나게 길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못합니다. 두번째 부류는 글래드웰 같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공부 시간과 실력의 관계를 알고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공부시간이 긴 것이 핵심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공부시간을 절대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도 어릴 때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는 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지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반복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무시되고 있는 것은 이런 훈련 자체의 질입니다. 전문가가 되는 데에 필요한 "의도적 수련"은 적절한 피드백을 받아야 하고, 실수 교정의 기회가 있어야 하며, 자신의 약점을 교정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별 생각 없이 오래 훈련한다고 전문성이 획득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글래드웰은 이 부분을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학생들이 "한국식 교육"을 받으며 이런 질 높은 "의도적 수련"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요.
예를 들어, 앤드루 와일즈란 수학자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데에 7년이 걸렸다고 했는데, 그 7년이 어떤 7년이었냐 이겁니다. 또 설렌버거 조종사가 1만9000시간의 비행 경험을 갖고 있었고 그 덕분에 허드슨 강의 기적이 가능했다고 하는데(확증 편향) 비슷하게 1만9000시간 혹은 그 이상의 비행 경험을 갖고 있으면서 "기적"이 불가능했던 조종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하는 것이죠.
저는 핀란드의 사례를 연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핀란드는 최근 PISA 테스트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1, 2등을 다투고 있죠. 하지만 흥미롭게도 다른 상위권 국가들과는 현격하게 학생들의 수업 시간이 짧습니다. 왜 그럴까요? 핀란드 같은 경우 공부시간과 학업성적의 XY 그래프를 그리면 일차회귀선 밖에 위치하는 나라일 겁니다. 진정한 의미의 아웃라이어(Outlier)이지요.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시간만 쏟아 붇는 교육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