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웹 서비스 중에는 상당히 세밀한 사항까지도 사용자가 선호에 따라 고를 수 있게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 이런 옵션의 다양함은 미덕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른 면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옵션이 많으면 사용자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거지? 뭔가 많이 알아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더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이걸 요렇게 세팅하면 뭔가 잘못 사용하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듭니다. 사용설명서를 보고 공부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름의 논리는 있습니다. 백이면 백 각자 취향은 천차만별이다 이거죠. 어떤 사람은 파란 바탕색이 좋고, 어떤 사람은 시간순으로 보길 선호하고, 어떤 이는 고급유저 모드를 선택하고.

문화인류학의 경우, 과거에는 주로 각 문화권의 차이를 규명하는데에 매혹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 중에는 과장되거나 혹은 잘못된 연구로 밝혀진 것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것보다 서로 유사한 것이 더 많았고, 또 그런 것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문화권에 상관없이 서로 비슷한 것을 느끼고 또 비슷한 사고를 합니다. 이 유사성은 대부분 인간이라는 신경생리학적 공통성에 연유할 것입니다.

공부를 시작하면 초기에는 다 같아 보입니다. 좀 지나면 다 달라 보입니다. 나중에는 다시 다 같아 보입니다만 애초의 같음과는 다른 차원의 같음입니다. 태극권이나 태권도나 거기서 거기 같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저 동네 사범의 태권도와 이 동네 사범의 태권도가 다르다고 느끼게 됩니다. 중국의 무술은 두박자고 우리 무술은 세박자니 뭐니 하는 소리에 매혹됩니다. 더 지나면 모든 무술이 다 통하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용쟁호투 DVD 판에 실린 이소룡의 인터뷰를 시청하다가 인상적인 대목을 만났습니다. 무술의 파(인터뷰에서는 style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소룡의 대답은 무술인으로서는 매우 파격적입니다. 나는 스타일을 부정한다. 인간이 두 다리 두 팔인 이상 다른 스타일이 있을 수 없다. 팔이 세개 다리가 네개인 괴물과 싸운다면 다른 스타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인 이상 두 다리 두 팔로 가장 효율적인 동작이 있을 뿐이지 스타일은 없다. 두 점을 잇는 최단 거리는 하나다.

HCI의 구루 도날드 노먼(Donald Norman)은 Human-Centered Design Considered Harmful이라는 유명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If it is so critical to understand the particular users of a product, then what happens when a product is designed to be used by almost anyone in the world? There are many designs that do work well for everyone. This is paradoxical, and it is this very paradox that led me to re-examine common dogma.
그는 인간 중심 디자인(User-Centered Design 등)보다 행동(activity) 중심 디자인이 낫다고 합니다. 개별 유저에 집중하면 다 달라보인다는 것이죠. 연봉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하지만 행동으로 접근하면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겁니다.

정말 뛰어난 디자인은 옵션이 별로 필요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리 많지 않고, 사용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또 합리적인 기본설정(Reasonable Defaults라고 하며 Ruby on Rails 등이 일례)이 되어 있어서, 프로그램을 설치하느라 수십가지 선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옵션이 많은 소프트웨어는 디자이너가 사용자에게 자유선택권을 선사한다는 미명을 달고 있지만, 실은 귀찮고 어려운 의사결정을 사용자에게 미루는 경우가 흔합니다. 개발시 내부에서 의견에 충돌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누구는 이게 좋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저게 좋다고 합니다. 서로 충돌을 합니다.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누군가가 외칩니다. "우리 둘 다 되게 하고 사용자가 선택하게 하죠!"

--김창준

p.s. 참고도서 : Human Univers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