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언어축제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후기를 읽어보세요)

제가 대안언어축제 같은 "새로운 형식의 컨퍼런스"를 하려는 뜻을 품은 것은 2002년 정도로 거슬로 올라갑니다. 한빛미디어에서 동영상 강의 촬영의 인연으로 그곳 부장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책을 써보라"는 말씀에, "그것보다 더 하고 싶은 것은 정말 획기적인 새로운 컨퍼런스를 기획하는 것이다, 그게 내 꿈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올해의 대안언어축제가 그 때 꿈꿨던 것에 꽤나 근접합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오늘은 이 대안언어축제가 다른 컨퍼런스와 특별히 다른 점 한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금요일 오프닝 때 간단하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동양화는 그 형식적인 면에서 서양화와 다르다. 여백이 있다. 동양화는 선의 예술이요, 서양화는 면의 예술이다. 동양화는 선이 중심이라 면이 비어있다. 여백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없음"으로 "있음"을 돕는다. 동양화의 여백은 감상자의 몫이 된다. 여백은 감상자에게 들어와서 하늘로도, 물로도, 산으로도 바뀐다.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는 것이다. 감상은 더이상 수동적이지 않다.

대안언어축제에도 그런 여백이 있다. 튜토리얼 사이에 한 시간씩 비어있다. 휴식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길다. 그 동안 서로 언어교환을 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OST/BOF라는 시간이 또 비어 있다. 서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배우기를 기대한다. 이런 여백의 시간 동안은 소방관 한 사람이 호스를 들이대고 여러 사람들의 머리속에 물을 퍼붓는 일을 하지 않는다. 미리 무언가가 꽉 짜여진 채로 들어차 있지 않다. 참가자들의 시간이다. 여러분들이 직접 채워넣는 시간이다.

어쩌면 이 축제의 무게 중심은 튜터리얼보다 언어교환과 OST/BOF에 있는지도 모른다.


축제가 끝나고 보니 이번 기간 동안 10여개의 새로운 언어를 학습한 분이 계시더군요 -- 튜터리얼만 들으면 최대 4개 이상 언어를 배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자봉분 중 한 분은 공통문제집합에서 약간 어려운 문제 하나를 골라 서너개의 언어로 그걸 모두 구현해 봤더니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ETech 2003에서 앨런 케이(Alan Kay, "Daddy, Are We There Yet?")와 클레이 셔키(Clay Shirky, "A Group Is Its Own Worst Enemy")의 발표를 듣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는 분이 축제 마지막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ETech 2003보다 더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여백의 아름다움입니다.

--김창준

p.s. 이런 형식의 모임이 가능하며, 또 재미있고, 동시에 매우 학습적(learningful)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발표자, 참가자, 자봉 모든 분들에게 너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