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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책을 가장 많이 구입하는 곳은 아마존입니다(다음은 교보/영풍/yes24 등). 제 기억으로는 97년도에 첫 구매를 한 것 같습니다. 목록을 뽑아보니 지금까지 600여권을 구입했네요 -- 아마존에서만 이 정도 구입을 했고 다른 국내 온오프라인 서점을 합하면 두 세 배가 될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독서량이 해가 지나면서 계속 늘어났는데 최근 일년(작년 6월부터) 동안에는 아마존에서 150여권을 구입했군요. 통상 저는 구입 서적의 대략 80% 이상을 읽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읽은 책 숫자(예컨대 일년에 몇 권 읽는가 등)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세미나 위키에 몇 년 전에 썼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페이지 이름은 "책 많이 읽지 마라"였습니다.



책을 좀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독서목록 같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관리 서적들에서 나오는 소위 할일 목록(to-do list)의 병폐를 고스란히 갖고 있습니다. 즉, 읽기 쉬운 것들만 읽고 읽기 어려운 그러나 중요한 책들은 계속 목록에 수개월간, 수년간 정체한다는 것입니다. 읽는 권 수에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십시오. 중요한 책이지만 계속 미루고 있는 책이 있지는 않은지, 내가 요즘 읽으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책들이란 결국 내가 읽은 책 수에 카운트를 하나 더 올리기 위한 것은 아닌지.

얼마나 많이 읽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어차피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보고 죽지는 못할테니까요.

하지만 저마다 책읽기의 목적이 다를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죠.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The Seven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이라는 자기계발 서적은 너무 유명해서 이 분야의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일컬어 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 책(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 First Things First)에서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는 우리가 하는 일을 2개 축, 그러니까 급한가, 중요한가 두가지 각각에 대해 평가를 할 수 있고, 그러면 2 곱하기 2 해서 총 4개의 면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 4사분면적 사고(2x2 매트릭스 사고라고도 하는데, "2x2 매트릭스"라는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를 독서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급한 책이 있고 안 급한 책이 있을 겁니다. 당장 다음주에 시험을 친다. 그러면 시험에 포함되는 교재를 읽어야겠죠. 언제 시간 나면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은데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까 나중으로 미룰 수도 있겠지요. 다음 주에 회사에서 스터디 발제가 있으면 또 급한 책이 되겠고, 요즘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개발 서적이라면 또 급한 책에 속할 겁니다. 이와는 다르게, 중요한 책과 덜 중요한 책이 있습니다. 나에게 큰 영향을 주고, 오래도록 남을 책이면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두가지 축을 합하면,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책, 급하고 중요한 책,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책,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책 네가지의 구분이 나옵니다. 코비의 조언은 간단합니다. 급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은 줄여라.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II quadrant에 속함)은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위임을 활용해라.

자신이 지난 일 년간 읽었던 책을 인덱스 카드에 하나씩 적고 책상 위에 흐트린 다음 네 구획으로 나눠보세요. 어디에 가장 많은 카드가 모입니까? 제2사분면(급하지 않으나 중요한)은 얼마나 됩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들을 카드에 하나씩 써보세요. 이걸 네 개의 공간에 나눠보세요. 그리고 그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책(급하건 아니건)에 대해, 대기 기간(처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현재까지 지난 시간)을 카드 구석에 표기해 보세요. 평균을 내보세요. 중요한 책의 평균 대기 기간이 얼마나 되나요?

대부분의 경우, 1년 2년 계속 읽기를 미뤄오는 책 중에는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면 1년 정도 미루는 중에 "읽을 책 목록"에서 자동으로 나가 떨어져 버립니다. 그런식으로 읽진 않지만 방 서가에 고이 모셔둔 책, 가끔씩 겉표지를 보면서 흐뭇해 하는 책들 중에 진짜배기가 있습니다. 나를 크게 변화시켜 줄 그런 책 말입니다. 그런 책들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한 사람이 일년에 몇 권을 읽느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읽는 책이 정말 "자신이 읽고 싶어하는 책"인지, 아니면 그런 책들을 미루면서 대신 자신에게 핑계 대고 자기 만족하느라(그래도 나는 몇 권 읽었잖아!) 읽는 불필요한 책들인지, 그게 중요한 겁니다. 시시껄렁한 책 100권 읽는다고 해서, 그런 책보다 100배 가치있는 책 한 권 읽는 것과 동등한 가치를 얻기 어렵습니다.

급한 책들만 읽으면 현재만 보고 살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적응력이 점점 떨어집니다. 퇴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빚이 쌓입니다. 급하지 않으나 중요한 것은 프로그래밍으로 치자면 리팩토링(코드 엔트로피를 낮추는 기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리팩토링은 빚을 갚습니다. 외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혀줍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건 재빨리 적응하고 변화를 포용할 능력을 키워줍니다.

몇 년 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미뤄왔던 책이 있다면 지금 당장 서가에서 꺼내서 맘에 드는 부분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세요. 시작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책을 꺼내놓고 한 페이지 읽기는 쉽습니다. 혹시 모르잖습니까. 은연중 그 자리에서 수십 페이지를 읽게 될지. (제가 예전에 써둔 How To Read It이 미루던 책을 읽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창준

p.s. 이 글은 웹에서 글 읽기에도 적용됩니다. 읽어야지 하면서 pdf를 저장해 두거나 즐겨찾기나 del.icio.us에 넣어두거나 한 것들 많이 있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