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자바 컨퍼런스 강의 때 한 분이 물으셨습니다.

"XP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소양은 무엇일까요?"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지막하지만 약간은 흥분한 어조로.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을 모르는 체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아랫 사람들이 뭔가 하려고 하는 것이 리더 자신이 답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일 때, "그거 그렇게 하면 안돼" 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그걸 꾹 참고 지켜봐 줘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늘 느끼지만 자기가 잘 아는 것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워드 아저씨 말씀하시길, "침묵과 무지를 혼동하는 사람들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는 것에 대해 잠시 참고 기다려줄 수 있는 능력(혹은 답을 내 머리에서 네 머리로 전이시킨다보다, 너의 머리 속에서 스스로 답을 꽃피우게 한다 -- 우상단의 애자일컨설팅 로고 참고)은, 제가 이제부터 말하려는 실패에 대한 태도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패에는 두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훨씬 어렵고, 그 결과도 좋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런 문제점이 있습니다. 아랫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뭔가 해보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꽤나 드문 일이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가지치기를 하려들면 사람들의 의지가 팍팍 떨어지고 사기가 죽습니다. 시키는 일 외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일은 자기 희생으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다음부터는 뭔가 나서고 싶어도 꺼리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보신 주의로 가게 됩니다. 나서봐야 고생한다 이거죠. 하지만 후자의 경우, 일단 정말 실패하게 되더라도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 일에 참여한 사람들은 학습을 하게 됩니다(하지만 그런 "직접 시도해보기" 없이 "이러면 안돼"라는 말과 "하지마"라는 명령만으로는 아무 학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리더의 예측과 달리,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좋은 일 아닙니까.

제가 주변에서 많이 관찰했던 것은 훌륭한 리더들은 이런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꼭 XP에 대한 문제만은 아닙니다. 모든 뛰어난 리더가 갖춰야할 소양입니다.

위키위키의 아버지이자 위대한 프로그래머로 일컬어지는 워드 커닝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Fail early and often. 일찍 그리고 자주 실패하라는 것이죠. 제가 몇 년 전에 워드와 인터뷰 했던 을 인용하겠습니다.

김창준: 프로젝트 실패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렇다면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실패에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만약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워드: 저 역시, 남이 실패하는 것을 봤고 또 저 자신 직접 실패를 경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실패가 너무 오래 시간을 끌지 않는 한 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패가 터무니 없이 길게 늘어나서 모든 사람이 고생하게 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잘못된 아이디어에 너무 오랫동안 집착하는 데에 기인합니다. 잘(즉, 재빨리) 실패하면 해결책이 등장할 때 우리가 그걸 알아챌 수 있는 준비가 됩니다.

최근 메일링 리스트에서 워드는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일찍, 그리고 자주해야 합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하바드 비지니스 리뷰 2003년 1월호에는 조직내에서 사람들의 동기와 생산성은 어느 정도의 실패율이 있어야 최고가 된다는 논문(Pygmalion in Management, J. Sterling Livingston)이 실렸다. 또한, "일 잘하는 법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배운다"라는 최근 번역된 서적에선, MS에서는 일을 망칠 때마다 승진이 된다는 재미난 이야기를 한다.


많은 회사들은 학습을 최소화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훌륭한 회사는 학습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의 회사를 잘 관찰해 보세요. 자신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잘 관찰해 보세요. 학습을 최대화하는가요 최소화하는가요? 과학 실험에서 학습이 최대화 되는 시점은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약 반반인 때라고 합니다. 과학 실험과 비지니스가 많이 다를까요? 과학 실험 역시 실험의 성공을 원하며, 인력, 비용, 시간 등의 문제가 결부됩니다.

앞에서 언급했는데, 일 잘하는 법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배운다라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계 굴지의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실패로 끝난 프로젝트를 맡았던 사람에게 승진의 기회를 주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실제로 러스 시겔맨 부사장은 일을 망칠 때마다 승진한 케이스.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기 때문에 실수를 작업 과정의 당연한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런 독특한 기업문화를 확립했다.

IBM의 설립자 토마스 왓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공율을 높히고 싶다면 실패율을 두배로 늘려라.

구글의 8:2 전략, 빠른 베타서비스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저희는 테스트를 많이 해요. 더 생각을 해서 모레하는 것 보다 일단 빨리 해서 내일 할 수 있으면, 내일 올려놓고..안되면 빨리 내리고.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하죠.

--구글 디자이너 데니스 황, http://www.youzin.com/blog/archives/000355.html

 
Dean Keith Simonton이라는 심리학자가 창의성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그에 따르면 특히 과학자들의 경우, 창의적, 혁신적 업적을 낸 것으로 평가받는 사람일수록 발표 건수(논문, 책 등)가 많았다고 합니다. 두가지 간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이야기. 또한, 한 과학자가 발표한 것들의 평균은 대부분 비슷했다고 합니다. 즉, 위대한 논문을 쓴 사람은 동시에 형편없는 논문도 썼다고. 따라서 성공적인 논문을 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횟수를 늘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Quantity(양)가 Quanlity(질)보다 우선하는 예입니다. 

리더의 실패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 혹은 오히려 실패를 기회로 보는 태도, 직원들의 자발적 시도를 중요시하고 격려하는 태도, 직원들을 숙제하기 싫어하는 초등학생이 아니라 각자 똑똑하고 성숙한 자율적 인간으로 보는 태도는 직원들의 사기나 학습과 직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미래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리더십의 근본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열정의 불꽃을 태우고 그걸 잘 살리는 것에 있으며
 
모든 반-리더십(anti-leadership)의 근본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어떤 불꽃이라도 일어나려고 하면 거기에 물을 쏟아붓는 것에 있습니다.
 
--김창준

p.s. Corolloary: 만약 자신이 이런 반리더십이 만연한 조직에 있다면 어떤 희생과 비용을 치뤄서라도 빨리 조직을 바꾸는 것(Change your organization or change your organization -- 조직 자체를 변화시키려고 해보고 안되면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라)이 자신의 정신 건강, 육체 건강, 성장, 삶의 질 모든 면에 있어 좋습니다("좋습니다"는 너무 약하군요, "...삶의 질 모든 것을 위한 유일한 선택입니다"로 바꿉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자신을 불태우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무기력을 학습하는 일입니다.